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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 명상을 통해 오늘을 산다

윤종모 주교  |  편집 김혜인 기자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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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세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고, 그 다음으로 행복한 사람은 태어났으되 빨리 죽은 사람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이 세상을 고통이 가득한 곳으로 보았다. 그러니 고통이 가득한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무슨 축복이고 행복이냐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의 고통은 상징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존재로서는 도무지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들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죽음은 가장 두렵고 가장 큰 고통이다. 언제까지라도 살 것처럼 오만하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위선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엄중한 경고를 보낸다.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옛날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노예들은 그 뒤를 따르게 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그때 전쟁에서 포로로 잡혀온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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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 혹은 ‘너도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라는 뜻이다. 이 말이 주는 교훈의 의미는 전쟁에서 이겨 우쭐대며 시가행진을 하는 장군에게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너무 우쭐대지 말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너도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라는 뜻일 것이다. 

교회에서는 사순대재 수일, 즉 ‘재의 수요일’이라고 부르는 날에 사제가 신자들의 이마에 잿가루로 십자가를 그으며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으로부터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말한다. 이 말의 의미는 인간의 운명과 한계상황을 이해하고 진지하고 겸손하게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붓다는 삶이란 것이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마침내는 죽어야 하는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했다. ‘苦’라는 말에는 고통이라는 뜻과 함께 ‘인간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기에 그것은 더욱 커다란 고통이 된다.

성공회의 예배에서는 기도문의 앞부분에 ‘기리에 일레이손(Kyrie Eleison)’이라는 간구문이 있다. 이 말은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이다. 인간은 신(神) 앞에 서면 다 불쌍한 존재이다. 천하의 권력자도 그 권력으로 죽음을 이길 수 없고, 재벌도 돈으로 죽음을 살 수 없으며, 천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죽을 때는 권력자도, 재벌도, 천재도, 영웅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내려놓고 맨손으로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신 앞에 나아오면 왕도 거지도 다 ‘기리에 일레이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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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나이가 들어가면서 죽음에 대한 명상을 자주 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는다. 나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나의 삶을 성찰하게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이기적으로만 살다가 갈 것인가, 아니면 사랑하고, 배려하고, 감사하며 살다가 갈 것인가?

나는 명상 중에 미국의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가 쓴 <소셜 애니멀>이란 책에서 주인공인 헤럴드가 죽기 직전에 자기 자신에게 물었던 4가지 질문을 나 자신에게도 물어보곤 한다.

나는 나 자신을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들었는가?

나는 미래 세대를 위해서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나는 이 세속적인 세상을 초월했는가?

나는 사랑했는가?

메멘토 모리! 이 말은 명상 중에 성찰해야 할 명제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명제가 아닌가 한다.

글ㅣ 윤종모
대한성공회 관구장과 부산교구장을 지냈다. 신학생 때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20여 년 전 캐나다의 한 성공회 수녀원에 머물며 명상의 참맛을 느끼고 지금까지 치유 명상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 초심자와 수련자를 위한 책 '치유명상 5단계'(동연)를 펴냈다.

명상한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지만 꾸준히 명상하면 삶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명상 덕분에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게 되어 전보다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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