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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손주를 울린 내 행동, 마음챙김 하여 바라봤더니...

윤종모 주교  |  편집 홍헌표 기자  201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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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도 시대적 흐름이 있다. 요즘 명상의 시대적 흐름은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 meditation)이 아닌가 한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외부 혹은 내면의 어떤 동기에 의해서 한 생각을 일으키고 그 생각에 따라 말하고 행동한다. 그러나 그 생각을 일으키고, 거기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는 뿌리인 마음은 잘 살펴보지 않는다. 마음챙김은 그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고, 명상에서의 마음챙김은 그 마음을 바라보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 

팔리어인 ‘사띠(sati)’가 영어 ‘mindfulness’로 번역되었고,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마음챔김’이다. ‘사띠(sati)’는 마음챙김 하여 집중한다는 뜻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어떤 일을 판단이나 비판 없이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리고 어떤 사실을 바르게 알아차린다는 알아차림의 뜻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그래서 사띠는 때로는 마음챙김으로 때로는 알아차림으로 번역된다.
학자들 사이에는 사띠를 마음챙김으로 혹은 알아차림으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 논쟁이 있으나 그것은 그다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뿌리인 마음을 마음챙김 하여 바라보는 것이고, 진실을 바르게 알아차리는 것이고, 명상을 통하여 마음챙김을 훈련하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6살과 8살인 손자 아이 둘을 차에 태우고 그 아이들 집으로 데려다 준 적이 있다. 아이들은 곧 크리스마스가 되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어떤 선물을 주실까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차 안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내가 말했다. “너희들 그렇게 계속 싸우면 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말해서 너희들 선물 주지 말라고 할 거야."
둘째 아이가 말했다.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를 알아요?"
“알지."
“어떻게 알아요?"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와 친구거든."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와 친구라는 걸 어떻게 믿어요? 할아버지가 산타 할아버지와 친구라는 걸 증명해 보세요."
둘째 아이는 끈질기게 내가 산타 할아버지와 친구라는 사실을 증명해 보라고 떼를 썼다. 내가 이제 그만하자고 달랬지만 계속해서 증명해 보라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언성을 좀 높이자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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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준 뒤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는 나의 행동을 마음챙김 하여 바라보았다. ‘아, 내가 아이에게 화를 내고 있네. 아이는 울고 있고......’ 그리고 오늘 일어난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일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지? 아이가 오늘따라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며 나에게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지?’
순간 나는 알아차렸다. 내가 아이들에게 “너희들 계속 그렇게 싸우면 내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너희들 선물 주지 말라고 할 거야"라고 말한 것은 아이들에게는 일종의 협박으로 들렸을 것이다. 둘째 아이는 정확하게 그 점을 지적하지는 못했지만, 나의 협박성 발언에 기분도 상하고, 선물도 받지 못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도 느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너희들 그렇게 계속 싸우면 산타 할아버지가 싸우는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실까?" 그랬더라면 이야기의 방향이 전혀 다르게 흘러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마음챙김, 그리고 알아차림의 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명상을 하면서 마음챙김과 알아차림 훈련을 계속하면 우리는 조금씩 성장하여 성숙한 성격을 형성하게 될 것이고, 좀 더 진지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깨달음을 얻어 깊이를 더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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