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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삶

한 번쯤 작심하고 하던 일을 멈춰라

미얀마 108일 단기출가를 앞두고

양희연 교수  |  편집 김혜인 기자  20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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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종이 한 장을 펼쳐 지금으로부터 한 달 뒤를 떠올리며, 그때까지 스스로가 정리해야 할 목록을 적기 시작했다. 도시가스비 자동이체 신청, 차 트렁크 정리, 만나려다 못 만난 사람 만나기, 미처 못 건 액자 걸기... 생각보다 단순하고 간단한 일들이 하얀 종이에 적힌다.

그녀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단기 출가. 108일간의 수행자의 삶을 결정 내린 후 그 기간을 위한 준비를 한 달 동안 하기로 한 그녀는 그 공백 기간 동안 차질없이 준비돼 있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있다. 길다고 할 수 없을 지라도 결코 짧지 않다고 할 수 없는 반백의 삶을 한차례 정리하고 이후 삶을 준비하면서 나름 큰 결심을 내린 차이다. 처음에 적어 내릴 때만 해도 근 4달 정도의 공백 기간에 대한 준비였는데 적다 보니 그녀의 뒤통수를 잡아당기는 뭔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람들.

오늘도 만나고 또 내일도 만날 사람도 있고, 만난 지가 오래돼 한참 못 본 사람도 있으며 오늘 또 내일 새롭게 만날 사람도 있다. 외부 사람만 떠올리다가 갑자기 한 집 바로 옆에 있는 가족이 눈에 들어온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면서 느끼는 가족의 분주한 움직임. 그녀는 물을 마시고 씻고 말리는 움직임을 잠시 느끼다가 익숙한 사람들에게 대하는 자신의 태도를 보게 되었다. 늘 같은 질문, 같은 대답. 그것이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해져 정작 소중함을 못 느끼고 있었구나...

멈추고 다시 돌아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새삼스레 그 일상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알아차린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엄마로 얼마나 오래 있을 수 있을까. 한 달 뒤 출가자의 삶을 살 때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그리울까... 지금이 영원하지 않음을, 지금을 충분히 느낄 것을, 지금에 감사할 때 이 순간이 온전함을 새삼 알게 되며 그녀는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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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다 보면 문득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어느 한길로 가다가 주변도 돌아보고 왔던 길도 살피며 혹시 놓친 것은 없는지, 본의 아니게 뭔가 잘못한 일은 없는지, 내 방향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욕심이나 분노나 무지에 싸여 제대로 된 길을 못 가고 있지 않은지 점검하는 시간. PAUSE. 멈춤의 시간.

사실 짧게라도 규칙적인 명상을 하고 있다면 그 자체로 멈춤과 돌아봄의 시간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쯤은 작정하고 한번 멈춰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 아닐까.

필자가 한 달 뒤 미얀마 단기 출가를 앞두고 했던 경험을 적어보며,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작은 것들이지만 그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좀 더 확연하게 알게 되었다. 그 일상이 쌓여 현재가 되었으며 그 현재들이 쌓여 과거가 되고, 그것이 미래와 연결됨을, 머리로는 이미 정리했던 내용이 이제서야 가슴으로 조금 내려오는 것을 알아차리며 정말로 안다는 것에 대해 좀 더 다가가는 시간을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

아주 짧게라도 한 번쯤 작정하고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 관성대로, 살던 대로 살고 있지 않은지, 지금, 이 순간 나는 깨어있는지, 한번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ㅣ 양희연
삶속의 대안, 대안적 삶을 살기위한 몸짓으로 NGO활동가를 하던 중에 요가와 명상을 만났다. 힘들고 암담했던 시기에 요가 덕분에 새로운 삶이 열리는 것을 경험했다. 이를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자 요가심리학을 공부했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요가통합치료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모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요가학회 총무이사, (사)한국명상학회 이사이며 ‘마음건강 길’의 ‘1일 집중수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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