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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한 달 살기

1030분 만에 스쿠버다이빙 매력에 빠져

"무섭지 않다, 할 수 있다" 자기 최면 후 풍덩~

명지예 기자  2019-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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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바다로 다이빙하러 가는 날. 아침부터 나는 혼잣말을 하며 자기 최면을 시도했다. “전혀 무섭지 않다. 나는 할 수 있다." 수영복을 싸면서 중얼거리는 내 모습을 본 친구가 요즘은 중학생들도 가뿐히 한다더라"며 놀릴 정도였다.

잭의 차를 타고 누사두아(Nusa Dua)의 베노아 만(Benoa Bay)으로 향했다. 다이빙 지점은 해변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나가야 하는 곳이었다.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가서 다이빙을 한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베노아 만에 도착해 작은 보트로 갈아탔다. 장비는 모두 다이빙 지점으로 가는 동안 보트에서 착용했다. 잭은 오늘 가는 곳은 물살도 약하고 매우 안전하다"며 계속 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잭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그 보트 위에서 마음속으로 계속 후회했다. 마음의 안정을 위해 떠나온 여행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까지도 스트레스였다. 나는 다이빙 지점에 도착하고 나서도 바다로 뛰어내리지 못하고 한참 망설였다. 깊은 바닷물이 어둡게 보여서 겁에 질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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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사두아의 다이빙 지점. 다이빙을 가거나 갔다 돌아오는 배들이 보인다.

그 순간 잭이 한 말이 머릿속에 콕 박혔다. “여기서는 검게 보이지만, 아래는 사실 에메랄드빛이다."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발리 바다의 진짜 모습을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이 무서운 바다가 아니라 아름다운 바다일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장비를 한 번 더 확인한 뒤드디어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심 15미터 아래로 어떻게 내려갔는지 모르겠다. 그저 산소호흡기로 호흡하는 데에만 신경 썼다. 조금씩 내려갈수록 소음은 사라지고 고요한 상태에서 내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평생 처음 보는 해저가 펼쳐졌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물속이라 둔해진 몸, 유일하게 들리는 내 숨소리, 눈앞에 있는 알록달록한 물고기와 해초들까지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잭의 말대로 이곳의 진짜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나는 그렇게 첫 다이빙 30분 만에 다이빙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휴식을 위해 보트로 올라와서 잔뜩 상기된 채로 잭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만난 강습생 중 가장 용감했다"며 나를 북돋아주었다. 15분 정도 쉬고 다시 바닷속으로 깊이 내려갔다. 수중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했던 나는 모든 장면을 눈으로 기억하기 위해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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뚤람벤의 다이빙 지점. 해변이 돌로 되어있고 걸어서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있다.

다음 날에는 뚤람벤(Tulamben)으로 다이빙을 하러 갔다. 뚤람벤 다이빙 지점에는 2차 대전 중 일본의 어뢰공격을 받고 침몰한 미국군함이 있다. 그리고 특이하게 이곳은 바닥이 아주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어 해변에서 다이빙 지점까지 걸어서 들어간다.

뚤람벤 다이빙 때는 나도 조금 여유가 생겨 잠수 중에도 잭의 수중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할 수 있었다. 수영을 잘 못하는 탓에 원하는 곳으로 쉽게 헤엄쳐 갈 수는 없었지만 난파선의 넓은 공간까지 들어갔다 나오며 구경했다. 물이 무섭다는 생각도 이제는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바닷속 풍경을 감상하며 헤엄치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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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에서 잭의 지도에 따라 산소호흡기 탈착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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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빙 중에 본 신기한 해초와 물고기.

다이빙을 모두 끝내고 자격증에 쓰일 사진을 찍었다. 자격증 발급에는 약 한 달이 걸린다고 해서 한국의 집 주소를 적어 냈다. 마지막으로 잭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이틀 연속 체력을 많이 써서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만큼은 날아갈 것 같았다. 나는 이제 스스로 물 공포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서 노곤한 몸을 뉘었다. 이번 여행이 나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러 온 여행이었지만 마음에는 오히려 많은 감정을 담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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