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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한 달 살기

2발리의 첫인상

보는 사람까지 흥겨워지는 장례식

명지예 기자  2019-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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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떠나는 날이 왔다. 사실 직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떠난다는 실감도 제대로 못했다. 게다가 전날에 한 달 치 짐을 싸다가 갑자기 걱정이 앞섰다.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한 달이 너무 길게 느껴졌던 것이다. ‘어쩌자고 이런 결정을 했지후회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항공권, 숙박이용료 등 이미 결제해 둔 돈들이 떠올라 반쯤 억지로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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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주택가. 논과 나무가 많아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첫 여행지 우붓(Ubud)에 도착하자마자 완전히 사라졌다. 공기에서부터 한국과는 다른 냄새가 났다. 후덥지근한 공기 속에 풀냄새가 어려 있었다. 우붓은 발리 응우라라이 공항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가야 있는 내륙 지역이다. 택시보다는 우버가 훨씬 쌌기 때문에 우버를 선택했다.

숙소는 프라이빗 풀이 있는 주택이었고, 담장은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새 소리와 개구리 소리, 난생 처음 듣는 도마뱀 울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왔다. 앞으로 이곳에서 열흘 동안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행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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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숙소의 마당. 아침에 집에서 나오면 보이는 풍경이다.

짐을 풀고 나자 하우스메이드 두 명이 인사를 하러 왔다. 매일 조식을 준비해주고 낮에 우리가 집을 비우면 청소를 해준다고 했다. 둘은 부부 같았는데, 인상이 푸근하고 굉장히 친절했다. 내가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하자 우붓 관광 지도와 각종 레저 안내서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영어를 잘 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주려고 했다.

그들은 내게 운이 좋다고 말했다. 오후에 우붓 왕가 인물의 장례식이 있다는 것이다. 우붓 중심지로 나가면 꽤 볼만할 것이라며 추천했다. 여행의 시작이 좋았다. 당장 가보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스쿠터를 렌트해서 나갔다. 우붓의 도로는 대개 왕복 2차선이고 좁아서 스쿠터가 보편적으로 쓰인다고 한다. 혹시 몰라 한국에서 국제면허증을 준비해온 게 도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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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숙소 앞의 거리. 차보다는 스쿠터가 훨씬 많이 다닌다.

지도를 따라 우붓의 중심 거리로 갔더니 벌써 장례 행렬 준비가 한창이었다. 왕가의 하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갓길에 주차된 차들을 인도로 번쩍 들어 올리고 구경 나온 인파를 길 양 끝으로 몰았다. 장례식 준비였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았다. 장례식 주인공이 좋은 곳으로 갔다는 믿음이 확고한 듯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저 멀리서 소란스러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릴 때부터 장례 행렬은 선명히 볼 수 있었다. 놀이공원 퍼레이드에 쓰이는 것보다 훨씬 큰 조형물들이 쓰였기 때문이다. 가까이 다가와서야 그것들이 모두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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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장례 행렬. 수많은 사람들이 조형물을 가마처럼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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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행렬 속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구경꾼들도 휘파람을 불거나 소리를 내면서 호응했다. 이렇게 화려하고 즐거운 장례식으로 떠나가는 주인공은 전혀 쓸쓸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까지 흥이 나는 장례식이었으니 말이다.

발리의 공기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 장례식을 보다니, 하우스메이드 말대로 난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발리에 왔다는 걸 피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 처음 맡는 냄새, 처음 듣는 소리 모두 한번에 훅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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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첫날 밤부터 푹 잘 수 있었다.

오후에는 숙소 근처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었다. 늦은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우붓의 저녁은 어두웠다. 잠깐 시내로 다녀왔을 뿐 별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만족스러웠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침대에 편안하게 누웠다. 잠들 때까지도 내일 무엇을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오늘 찍은 사진들을 다시 보면서 발리에 온 기분을 만끽할 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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