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인물 탐구

소신의 언론인 조갑제 ②

소신을 위해 미칠 줄 아는 사람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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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권 붕괴 후엔 처참한 북한 주목

1989년 동구권 붕괴 이후 가난한 중국 옌볜 동포들이 우리나라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북한의 처참한 생활상이 속속 전해지기 시작했다조갑제 기자는 이들 보따리 장수의 북한 여행기를 다룬 목탄차로 달리는 공화국’(월간조선 1990년 12월호)을 기획하면서 그 실상에 놀라고 분노했다.

당시 월간조선에서 함께 근무하던 나는 그의 분노가 반공이라는 이념의 틀이 아니라 휴머니즘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느꼈다겉으로는 그럴싸한 자주와 이데올로기를 들먹이며 호의호식하는 권력층 밑에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북한 동포들의 현실에 분노한 것이었다.

조갑제는 나아가 자신이 북한의 실상을 폭로해 현실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과거 우리 군부독재의 성역에 도전했던 그가 민주화 이후 북한이란 새로운 성역에 도전하기 시작한 것이다그는 취재력을 북한에 집중함으로써 훗날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기자가 됐다.

1990년대 언로(言路)가 뚫린 좋은 세상이 도래하자 군사정권 시절 침묵 내지 동조하던 지식인 중에서 열혈’ 정의의 사도들이 등장했다그들 중에는 진정한 의미의 개방·진보적 인사도 있었겠지만사이비 인사들도 많았다그들은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밀착해 시대에 영합하고 여론에 아첨했다사건의 본질은 외면한 채 적당히 주변 여론에 호응하는가 하면 비현실적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해답인 양 말했다.

그러나 조갑제는 정권과도시대와도 불화(不和)했다.

군부 독재 때는 군사정권을 비판했지만 민주화된 후에는 민주화 정권을 비판했다. 1993년 김영삼 정권이 등장하자 그들의 섣부른 대북접근 정책을 비판해 미움을 샀고햇볕정책을 추진했던 김대중·노무현 정권과는 아예 처음부터 담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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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조갑제는 기자로서 뿐 아니라 행동가(activist)로서 나서 좌우 이념 대립 현장 한복판에서 싸워 왔다그래서 그런지 예전과 다르게 글이나 주장이 단정적이며온유함 대신 거칠고 딱딱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오랜 투쟁에서 나오는 피로감도 엿보인다어떨 때는 내가 정의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정의란 누구의 독점물도 아닌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조갑제의 치열한 삶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일신의 영달이 아닌자기가 속한 공동체와 사람에 쏟아 붓는 관심과 애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갑제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끔씩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당신은 살아오면서 조갑제처럼 치열한 소신과 열정을 가져본 적이 있소?"

그러나 그 생각은 곧 메아리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와 비수처럼 찌른다.

나도 조갑제만큼 미쳐본 적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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