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인물 탐구

내가 만난 지휘자 정명훈 ③

바깥 삶은 '알레그로', 안쪽 삶은 '안단테'

함영준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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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 지휘자와 일본에서 처음 만난 이후 10년이 지났다. 그동안 서울시향은 일취월장했다. 지휘자 정명훈의 능력과 카리스마가 큰 몫을 했다. 그는 종종 ‘독불장군의 전형’이란 비판도 들었다. 정·재계 실력자들과의 교분이나 사교활동을 좋아하지 않으며, 학연·지연 등 인맥이나 정치적 고려도 배제한다.

그러나 서울시향의 단원 대부분은 그가 오로지 음악의 완성에만 집중한다는 사실을 안다. 항상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야 한다."며 매섭게 채찍질하는 것이 사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다. 

정명훈의 ‘긍정적 압박’은 어머니 故 이원숙 씨의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다. 그녀는 평생 아들에게 단 한 번도 “왜 못하느냐?"고 질책하지 않았다. 늘 “더 잘할 거야."라고 격려했다. 단원들은 정 지휘자의 지시가 “단순하고 명확하다."고 말한다. 그도 그 말에 동의한다. 

“내 일은 호텔 포터(porter, 짐꾼)와 비슷합니다. 그의 임무는 단순, 명확하죠. 짐을 들고 방까지 잘 옮겨주는 겁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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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훈은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하다. 서울시향에 나올 때는 아침 8시 전에 일찍 출근해 먼저 피아노를 친다. 리허설 중간 빈 시간에도 피아노를 치거나 악보를 본다. 농담이나 한담도 별로 없다. 그의 스케줄을 담당하는 직원은 “거의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쓴다."고 말했다. 마치 바쁜 사업가처럼 외국에 갔다 새벽 비행기로 돌아오면 바로 스케줄로 이어진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바쁘게 사는가.

“천재들은 어마어마한 재주가 있어요. 내가 100번쯤 봐야 외울 수 있는 악보를 단 몇 분 안에 해치웁니다. 이러니 내가 평생 노력할 수밖에 없죠."


순수해지려면 단순해져야 한다

그의 바깥 삶이 ‘알레그로(allegro, 빠르게)’라면 안쪽 삶은 그야말로 ‘안단테(andante, 느리게)’다. 퇴근하면 보통 집으로 쏜살같이 간다. VIP나 대기업 회장이 저녁을 먹자고 해도 대부분 사절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취미활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음악 외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 요리다. 연주가 끝난 후 늦은 저녁에, 집으로 달려와 부엌에 들어가 난장판을 만들면서 이것저것을 요리해 식구들과 둘러앉아 맛있게 먹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휴일이나 휴가 때도 거창한 것이 없다. 

“집에서의 일과는 그 이상 심플할 수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 공부하고 아침 먹고…, 다시 1시간 정도 걷다가 또 공부하고, 다시 점심 해먹고 걷다가 공부하죠. 그게 행복해요."

그는 1년을 삼등분해 한국과 프랑스에서 머물거나 외국 순회공연으로 보낸다. 프랑스의 남 프로방스 집에 있을 때는 농사를 짓는다. 덕분에 선탠한 사람처럼 얼굴이 그을려져 있다.

그는 세계적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14~2005)와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1908~1992)을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로 꼽았다. “줄리니는 성직자 같고 메시앙은 성인 같은 분입니다. 그분들 같이 겸손해지겠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 겸손함을 음악으로 연결시킨다면 ‘순수함’이라고 했다. “순수하려면 단순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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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볼 때 정명훈의 삶의 키워드는 ‘단순함’이었다. 이 복잡한 시대, 너도나도 빨리빨리 쫓고 쫓기며 온갖 에너지를 소모해 버리는 ‘번아웃(Burnout, 탈진증후군)’ 세상에서 그는 자신을 지키는 비법으로 ‘단순한 삶’을 택했다.

그의 일상은 음악 외에 가족·요리·신앙이 전부다. 그러나 그는 현명하다. ‘단순한 삶’이야말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삶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평생 수많은 사람을 접해본 나로서는 인물이 두 부류로 나뉜다. ‘뛰어난 사람’과 ‘생각나는 사람’이다. 정명훈은 후자다. 그를 만나고 난 뒤 내면에서 잊고 지내던 명징함, 투명함, 그리고 순수한 삶의 자세가 떠올랐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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