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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의 평가는 180도 달랐다" 소문 속 그의 진짜 모습은?

출소 후, 원한으로 남을 수 있던 관계를 역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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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그래픽

 4반세기전 그때 세상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성장을 하던 개발도상국 시절에는 온갖 명목의 뇌물이 넘쳐 났었다. 금융실명제나 공직자재산등록도 없었다. 지금은 공무원이 어떤 이유로든 돈을 받으면 처벌을 각오해야 하지만 당시는 적당히 묵인되던 사회였다. 청와대 비서관실에 소형금고가 있을 정도였다.

1988년 5공 전두환 정권이 6공 노태우로 바뀌면서 ‘5공 청산론’이 강하게 대두됐다. 민주화 바람과 함께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부정축재를 저지른 ‘실세(實勢)’들을 사법 심판대로 보내자는 여론이 들끓었다.

서울지하철 공사 사장을 지낸 김재명씨도 그중 하나였다. 국감에서도 집중성토가 됐지만, 예비역 육군 소장 출신인 그가 육사 후배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호 아래 전횡을 일삼고 막대한 이권을 챙겼다는 풍설이 파다했다. 그는 전대통령 재임기간 7년 내내 공사 사장을 지내며, 지금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2,3,4호선 대부분을 건설했다.   

검찰을 출입하던 나는 5공 비리 첫 타자로 그를 지목하고 대검 중앙수사부 검사와 의논했다. 

“수사합시다."

이미 내 머리에는 김씨가 비리의 당사자란 심증이 굳어졌고, 마음에는 군사독재의 거악(巨惡)을 척결하겠다는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특별수사의 베테랑이자 훗날 검찰 고위직까지 오른 그 검사도 수사에 동의했다. 하지만 아직 확보된 증거자료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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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국회에서 조사중인 비리의혹 내용을 근거로 ‘서울지하철공사 곧 수사’라는 제하로 신문 1면 톱으로 보도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검찰이 정예 수사요원을 투입, 조사에 나섰으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악소문은 풍성한데 입증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아주 교묘하게 비리의 흔적을 ‘세탁’한 것 같았다. 담당 검사는 난감해했다. 

“도대체 뭘 가지고 조사하지?"

 

나도 직접 취재에 나섰다. 어느날 저녁 늦게 김사장의 상도동 자택을 찾아갔다. 산동네 오래된 2층 양옥인데 고관대작 집치고는 너무 허술했다. 초인종을 누르니 행색이 초라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주인 계십니까?"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내가 주인인데요.…"

처음에는 부정축재를 하는 사람들의 위장술인가 의심했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보통 집 살림과 다를 바 없었다.

김사장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남편이 워낙 고지식한 성격에 매사 군대식이라 직장이나, 집에서나 문제가 많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약수터에 갔다 와서 식탁에 앉았을 때 아침밥이 1분1초라도 늦으면 불호령이 나요. 그러니 곁에 있는 사람 누군들  좋아하겠어요?"

그러나 군대 시절에도 월급 외에는 손을 안대는 ‘원칙주의자’로 유명해 그 때문에 전대통령에게 발탁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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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KBS

 그날 밤늦게까지 기다렸으나 김사장은 들어오지 않았다. 이후 연속 이틀간 그 집을 찾아갔다. 차려주는 음식을 먹으며 김씨의  팔순 어머니를 비롯 식구들과 이야기를 나눴고, 수사관처럼 방 하나하나를 다 들어가 보았다. 주변 동네 사람들도 탐문조사하였다. 이웃들은 부인이 시장도 잘 안가고 동네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살 정도로 검소하게 산다고 증언했다. 

구멍가게를 찾아갔다. 김사장네는 두부 계란 설탕 밀가루 비누 등을  외상으로 사서 월말 봉급날 일괄 계산했다.(그때 서민동네에선 흔히 그랬다)  구멍가게 주인이 보여주는 외상장부 액수를 보니 고작 몇만원 이었다.  

취재 결과 김사장은 오히려 매우 청빈한 사람이었다. 엄청난 이권이 있는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업자들이 주는 막대한 ‘떡값’을 외면했고, 권력 실세들의 부탁도 거절했다. 게다가 불 같은 성격, 군대식 사고방식과 행동 등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러니 권력자도, 업자도, 직원도 그를 좋아할 리 만무였다. 그는 한국적 상황에서 안팎으로 적을 만들었고 그것이 악성루머로 부풀려졌다.

그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한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달았다. 비리를 저지를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수사검사도, 나도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사람을 잘못 찍었어!…"

그러나 검찰이 이제 와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미 정치권과 언론은 사법처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여론의 희생양으로 구속됐다. 고작 고향 후배 회계사가 연말 인사치레로 200만원을 건넸다는 사실로 말이다. 

처음부터 그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고 보도를 주도했던 내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형식적으로는 오보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오보 아닌가?…

기자로서 도와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김사장에 대한 해명기사를 솔직하게 쓰는 것뿐이었다. 나는 부장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부장은 한참 나를 쳐다보다가 한마디 했다. “써 봐"

나는 그가 구속되던 날 해설 기사를 통해 그간 취재한 내용을 실었다.

 

한 사람을 놓고 내리는 평가가 얼마나 불완전하며, 그 다중집합(多衆集合)격인 여론도 때로 그 사람의 진면목과 180° 상반되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비록 김사장 집을 찾아가 실상을 확인해 보도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세상의 여론만 듣고 한 사람을 구속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셈이었다.

 

김사장 구속 후 1년쯤 지났을까 어느날 오후 전화가 걸려왔다.

“나 김재명입니다. 신문사 앞 코리아나 호텔 커피숍에 있으니 잠깐 뵙시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의 전화는 마치 ‘저승사자’처럼 들렸다. 그 거친 성격으로 내게 행패라도 부린다면…. 참으로 난감했다. 피할 수도 없고.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심정처럼 커피숍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저 만치 김사장 내외가 일어서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사장은 내 예상을 깨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공손하게 손을 내밀었다. 그는 항의하러 온 것이 아니라 감사하러 온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구속되던 날 내가 써준 기사 덕분에 자신의 명예가 회복됐다고 거듭 감사의 뜻을 표했다. 

내가 검찰 수사를 시킨 장본인이며 죄송하게 됐다는 말에 대해서도, 자신은 어차피 미운털이 박혀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리어 작은 선물 꾸러미를 내게 전했다. 

“기자님도 나처럼 부인한테 잘해주지 못할 것 같은데 아주머니께 꼭 전해주세요.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제 작은 정성입니다."

순간 내 마음 속에 뜨거운 무엇이 치밀었다. 동시에 마음 한 구석 어딘가의 체증(滯症)이 일순간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아, 세상 일이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반전될 수도 있구나!! 

자칫 평생 악연(惡緣)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김재명 사장과의 인연은 그가 세상을 뜰 때까지 17년간 이어졌다. 명절 때마다 고향에서 키운 버섯을 선물로 보내주는가하면, 내가 신문사를 나와 고생하고 있을 때는 찾아와 밥을 사고 격려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의 육사후배인 고명승 대장과 함께 을지로 평래옥에서 냉면을 먹으며 시국을 이야기했다. 몇 달 뒤 그는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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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김재명 사장

 지금 돌이켜 볼 때 만약 그가 구속되는 상황에서 내가 모른 척하고 넘어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내 평생 부끄러운 일로 남았을 것이요, 김사장도 원망과 한탄 속에서 살았을지 모른다.  

살다보면 누구나 실수나 잘못을 저지른다. 문제는 이후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나는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당장은 어렵지만 먼 훗날 돌아보면 가장 현명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내 양심에 ‘주홍글씨’처럼 남았을 수도 있었던 그 사건, 원한(怨恨)으로 끝날 수 있었던 그 인간 관계가 드라마틱하게 역전(逆轉)된 것은  바로 ‘정직(正直)’을 선택한 덕분이었다.

우리가 매사 정직하고 진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한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직은 아름답다. 그리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한 힘 중 하나다.

                  ※ 관련 유튜브 영상

 

■ "내가 받으면 떡값, 남이 받으면 뇌물" 서울지하철공사 김재명 사장 구속사건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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