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인물 탐구

혁명가에서 휴머니스트로 변신, 박노해 시인 ②

박노해의 생각을 바꾼 어느 여성 노동자의 한 마디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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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는 여순반란사건에 연루된 판소리꾼 아버지와 가톨릭 수녀를 꿈꾸었던 어머니 사이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런 집안 환경 탓인지 형(박기호)은 가톨릭정의구현사제단을 대표하는 신부가, 여동생은 수녀가 됐다.

6세 때 찾아온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가난과 이산가족. 숱한 고생 끝에 선린상고 야간부를 간신히 졸업한 그는 건설·섬유·화학·금속·운수 현장에서 가혹한 노동조건과 싸우며 노동 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이때 그는 평화의 기틀이 되라는 의미인 박기평(朴基平)이란 본명을 버리고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를 줄인 박노해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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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군사독재가 종식되고 민주화가 됐지만 그는 도리어 국가반란  수괴가 돼 1991년 여름 사형을 구형받았다.게다가 절대 진리라고 믿었던 사회주의마저 몰락했다는 소식(소련 붕괴)을 옥중에서 듣고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

재판을 위해 법정을 드나들던 어느 날 호송차 옆에 앉은 여인이 아이 둘 가진 노동자라며 말을 걸어 왔다.

선생님. 저도 노조에 참여하고 가진 자들 욕도 하고 잘못된 세상 확 바꿔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다 도둑놈 마음이었어요제 자신이 먼저 착하고 정의롭지 않고서 어떻게 세상 평화와 정의를 바랄 수 있겠어요. 가진 자들의 이기심과 부정 부패는 비판하면서 왜 제 자신의 탐욕과 작은 부정들은 함께 보지 않았을까요?"

그 말에 박노해는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경주교도소로 이감된 후 그의 심신은 급격히 허물어져 갔다. 온몸에 마비가 오고 눈은 실명됐으며 음식도 먹지 못한 채 차디찬 독방에서 누워 몇 달을 보냈다. 그의 귓전에는 그녀가 던진 물음이 계속 메아리쳤다.

꼭 묻고 싶은 말이 있어요. 사회주의가 정말 좋은 세상이요, 정의로운 사회라면 누가 힘들게 일하고, 무슨 재미로 살까요? 그런 좋은 사회가 언제 이뤄질까요? 언제쯤 이기적인 우리 노동자와 서민들이 그런 성인(聖人)으로 변화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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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스스로 영원한 패배자란 절망 속에 빠져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굳은 이념의 틀에 갇혀 이대로 죽기는 싫다"는 아우성이 솟구치고 있었다. ‘모두가 내게 돌팔매를 던질지라도 정직하자.’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

박노해는 이후 7년 동안 무너지고 깨어지는 게 자신의 일이었고 남은 희망이었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한 철저한 자기부정과 깨달음.

외부의 적과 투쟁하는 삶을 넘어서 바로 자기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진정한 혁명적 삶이요, 스스로도 너무 많은 죄를 지었다는 것을 깨닫는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됐다.

출소한 그는 2000년 어느 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뒤 언론 접촉 등을 통한 사회적 발언은 물론 과거 운동권 인사들과의 교류도 일절 끊었다. 대신 그는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인류가 직면한 생태·전쟁·양극화·영혼 등 네 가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운동에 나섰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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