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인물 탐구

인권 변호사 조영래 ①

폐암으로 43세에 타개...나와는 '동지적' 관계

함영준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5-14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3개월도 안돼 전국은 ‘광우병 파동’에 휩싸였다.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 허용조치가 광우병 전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여론이 전국을 지배한 것이었다. 5월 초에 시작된 촛불시위는 거세게 번져 나갔고, 6월에 들어서는 시위대가 서울 광화문부터 시청 앞까지 거리를 가득 메우는 사태로까지 악화됐다. 
3455810_tXx_99_20170401080203.png
출처: KBS
당초 평화적인 집회는 날이 갈수록 과격해지고 정치적 투쟁으로 변질됐다. 속수무책. 공권력은 마비된 지 오래다. 도대체 어떻게 무너진 법질서를 회복하겠는가? 불현듯 조영래 변호사의 망원동 수재 소송이 생각났다.
고3 때 정학 맞고도 서울대 수석입학
1984년 9월 1일부터 3일까지의 집중폭우로 서울·중부 일원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특히 상습 침수지역인 마포구 망원동 일대의 피해가 컸다. 당시만 해도 물난리는 천재(天災)로 인식됐다. 그러나 ‘인권변호사’ 조영래는 다르게 생각했다.
“부실 공사를 하고 유수지 물관리를 잘못해 발생한 인재(人災)다."
그는 대학 후배이자 사무장인 박석운과 함께 망원동 수재민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서울시와 건설사의 잘못이니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겠습니다. 수임료는 승소하시면 주십시오."

150716-945_04.jpg

취재기자와 변호사로 우리는 만났다. 부스스한 머리에 나지막한 목소리, 피워대는 줄담배…. 그것이 조 변호사의 첫인상이었다. 우리는 급속히 친해졌다. 아니, 내가 일방적으로 좋아했다. 연배도 10년 차이가 나고 딱히 공통점도 적었지만 어떤 ‘열정’, 사회를 개선하고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이 서로 통해 친해졌던 것 같다.
나는 ‘조영래 팬’이 돼 재판 하나하나를 중계방송하듯 보도했다. ‘언론의 재판권 침해’라고 할 만큼 수재민과 조 변호사 편에 선 일방적인 보도였다. 「망원동 유수지 붕괴사고 “원인은 배수관 균열"」(1985.3.5),  「망원동 수해는 역시 “인재"였다」(1985.7.26) 등등...
 

‘조변’(조 변호사의 준말)은 자타가 공인하는 수재요, 학생운동의 전설적 리더였다. 

경기고-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인 법조계 인사의 회고담이다.
“영래는 공부·학생운동·문화·예술 등 다방면에서 출중했어요. 김근태·손학규 등 동기생 중 단연 발군이었죠. 고3 때 한·일회담 반대시위(1964년)로 정학을 맞고서도 서울대를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고시(사시 13회)도 몇 개월 만에 덜컥 합격해 모든 사람이 부러워했죠."

4545.jpg

1980년대 중반, 민주화 운동이 가열되면서 조영래도 종횡무진 뛰어다녔다. 특히 부천서 성고문 사건 재판에서 피해자 권인숙 씨를 위한 그의 변론은 눈부셨다. 당시 인권변호사와 신문기자는 ‘동지적’ 관계였다. 우리는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눴다.

조영래를 비롯해 故 김상철 전 서울시장,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과 강남구 압구정동 광림교회 근처 카페에 자주 갔다. 이들은 인권변호사 2세대의 주역이었다. 이들을 주축으로 정법회가 만들어졌고 훗날 민변, 즉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으로 이어졌다.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서 조영래에 대한 나의 호칭은 ‘조 변호사님’에서 ‘조 선배’, 마지막에는 ‘형님’으로 변했다. 내가 몸담고 있던 <조선일보>에 노조가 만들어지자 그는 흔쾌히 노조 고문 변호사가 돼주었다.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가 1987년 6·29 선언으로 이뤄진 지 3년 뒤, 그는 폐암으로 쓰러져 43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타계했다. 1990년 12월 어느 날 새벽녘 나는 꿈속에서 그를 보았다. 손을 흔들고 사라져가던 그는 밝은 표정이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진행중인 시리즈 more

완결 시리즈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