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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영준의 인물 탐구

김훈의 무언의 울림 2

나이 오십에 경찰서 출입기자가 되다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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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 30여 년 간 기자, 작가, 교수, 청와대 비서관, 공기업 임원 등을 거치며 참으로 다양한 현실과 세상을 접했다. 잘 나갈 때는 그 사람의 본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내려올 때는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삶에서 수많은 반전反轉을 목격하거나 체험했다. 악연에서 출발했으나 평생 인연으로 발전한 경우도 있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여기 등장하는 20명의 인물들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대표하는 얼굴들이다. 그들은 좋건 나쁘건, 아주 치열한 삶을 살아왔다. 이 책은 내가 10~30년 이상 인연을 맺어 오면서 그들에 대해 관찰하고 숙고해온 기록이다.

김훈이 어느 날 지면에서 사라졌다. 1989년인가 ‘조직과의 불화’로 16년간 다니던 직장을 나와버린 것이다. 1990년대 민주화가 본격화되면서 언어는 고삐 풀린 말처럼 자유로워졌다. 온갖 주의·주장이 난무하고, 과거에는 하지 못했던 날 선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현장에는 살벌한 구호와 욕설, 폭로가 난무했다.

그러자 언론기관도 특유의 조심스러운 태도에서 벗어나 주장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관찰자(watcher)가 아닌 참여자(player)가 되기도 했다. 정파나 세력들은 이런 언론을 이용했다. 도움이 되면 박수를 쳤고, 불리하면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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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김훈은 프리랜서 작가, 주간지 편집장, 일간지 간부 등을 전전하다 2002년께 잠시 <한겨레>에서 말단 사건기자를 했다. 나이 오십이 넘어 신출내기들이 하는 경찰서 출입을 하다니…. 더구나 보수 성향의 그가 진보 신문에서. 

그는 600자 분량의 ‘거리의 칼럼’을 연재했다. 그러나 넘치는 감정을 담아 자기 생각을 장황하게 펼치던 과거 김훈의 글이 아니었다. 감정은 절제돼 드라이해졌고, 상황을 간결하게 보여주기만 했다.

예컨대 그가 쓴 ‘라파엘의 집’(2002년 3월 28일자)은 저마다 시국 걱정을 하면서도 정작 인근 어린이 보호시설은 외면해 결국 술집으로 바뀌는 서글픈 현실을 카메라로 비추듯 보여준다. 독자는 메시지를 금방 알아차린다. 전형적인 ‘Show, Don’t tell’식 기사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술집 골목에는 밤마다 지식인, 예술가, 언론인들이 몰려들어 언어의 해방구를 이룬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논하며 비분강개하는 것은 그들의 오랜 술버릇이다. 

그 술집 골목 한복판에 ‘라파엘의 집’이라는 시설이 있었다. 참혹한 운명을 타고난 어린이 20여 명이 거기에 수용되고 있었다. 시각ㆍ지체ㆍ정신의 장애를 한 몸으로 모두 감당해야 하는 중복장애 어린이들이다. 술 취한 지식인들은 이 ‘라파엘의 집’ 골목을 비틀거리며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동전 한 닢을 기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라파엘의 집’은 전세금을 못 이겨 2년 전에 종로구 평동 뒷골목으로 이사 갔다. (…) 

인사동 ‘라파엘의 집’은 술과 밥을 파는 식당으로 바뀌었다. 밤마다 이 식당에는 인사동 지식인들이 몰려든다.

 

진보·보수 신문 모두에 쓴 소리

김훈을 기자가 아닌, 소설가로 각인시켜준 걸작 《칼의 노래》도 마찬가지다. 수사적修辭的 장치는 전혀 동원하지 않고 주어와 동사, 문장의 뼈다귀만 갖고 썼다. 기자가 사실 보도하듯 말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로 시작된다. 당초 김훈은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놓고 고심했다고 한다. 전자는 객관적 상황 묘사요, 후자는 주관적 정서가 포함돼 있다. 마치 5공 시절 ‘경제가 좋다’와 ‘경제는 좋다’를 놓고 고민했던 경험과 비슷했다. 전자가 가치중립적이면서 긍정적인 반면 후자는 경제 이외의 다른 상황은 좋지 않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담고 있다.

왜 김훈은 ‘언론의 자유’가 넘쳐나는 시대에 도리어 혹독한 ‘자기 검열’을 하는가? 그의 작품들이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각광을 받게 된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스스로 ‘진정한 개혁세력’임을 표방한 노정권은 자신들에 반대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수구세력’으로 몰았다. 정권에 참여한 일부 인사들은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데 왜 따라오지 않고 말이 많은가"라는 식의 주장을 공공연히 했다.  

당연히 온갖 말의 공방전이 난무했고 이로 인한 불필요한 갈등과 분란이 빚어졌다. 노대통령부터 때로 너무 거칠거나 직설적인 말을 하다 보니 각종 설화(舌禍)에 시달렸다. 문성근ㆍ명계남 같은 이들의 언행에서는 ‘나는 선(善), 너희는 악(惡)’이라는 식의 교조주의적 냄새까지 풍겨났다.   

그 시절에는 사실보다 의견, 객관보다 주관, 이성理性보다 감정感情의 언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김훈의 글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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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고등학교, 대학 선후배 관계로 공·사석에서 가끔 만났다. 2004년께인가 그는 신문기자이던 내게 말했다. 

요즘 글쓰기가 어렵고, 신문·저널 읽기가 고통스럽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지 못하고 뒤죽박죽으로 쓴다. 의견을 사실처럼, 사실을 의견처럼 말한다."

예를 들어, 그의 눈에는 2002년 일어난 ‘효순·미선 사망’ 사건이 명백한 ‘사고’인데, 한쪽에서 ‘범죄’에다 ‘반미주의’로까지 몰고 간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의 언어에는 날 선 감정이 번뜩이기 시작했다. 사회 지도층 인사들부터 말의 품위를 잃고 막말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유행병처럼 번져나갔다. “인간답지 못한 ×", “개××" 등의 욕설이 공식석상에서 버젓이 등장했다.

김훈은 언어의 폭력화ㆍ무기화를 지적했다.

“언어는 타인에 의해 부정되고 수정될 수 있는 허약한 것이라는 점에서 힘을 갖는데, 우리 시대 언어는 돌처럼 굳어지고 완강해 무기를 닮아가고 있다."

그는 기자는 “본질적으로 문장가가 아니라 스파이"라고 규정했다. 지난至難한 사실 확인fact finding 작업을 거쳐 정보를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A란 사람을 ‘개자식’이라고 하고 싶어도 그렇게 쓰는 순간, A가 아닌 내가 개자식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A가 개자식일 수밖에 없는 이유와 물증을 찾아야 한다."

어느 날에는 우리의 사고思考체계에 근본적 의문을 던졌다. 

“요즘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가?’, ‘왜 이런가?’, ‘이것과 저것과의 관계는 어떤가?’ 등의 과학적 사고 대신 ‘내 마음에 드나, 안 드나?’ ‘내 생각과 맞나, 안 맞나?’, ‘내 편인가, 아닌가?’식의 정서적·이념적·정치적 생각을 한다. 신념의 언어가 아니라 과학의 언어로 사유思惟해야 한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언론이 같은 사건을 놓고 정반대로 해석하는가하면, 서로 상대방에 대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는 일들이 더욱 심해졌다. 술이 얼근히 들어가면 김훈은 그 큰 눈을 똑바로 뜨고 후배 기자들을 질책했다.

“지배적 언론이나 담론들이 당파성에 매몰돼 그것을 정의·신념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신념에 가득 찬 자들보다 의심에 가득 찬 자들을 신뢰한다."

결론적으로 김훈은 이 시대 언론기관이 권력기관 내지 사회세력화되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한겨레>에 대해서도 “사실에 입각한 객관적 저널리즘으로 존재할지, 아니면 하나의 사회세력으로 존재할지를 고민하라."고 했으며, 반대편에 있는 <조선일보>에 대해선 “마치 자기네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오만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나는 그가 기자들에게 보낸 고언苦言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사실에 바탕 해서 의견을 만들고,

의견에 바탕 해서 신념을 만들고,

신념에 바탕 해서 정의를 만들고,

정의에 바탕 해서 지향점을 만들어라.

이게 갈 길이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2018년부터 국내 저명한 심리학자들을 초빙, ‘8주 마음챙김 명상’ 강좌를 조선일보에 개설했다.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우울증 치유기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40대 중년 위기를 다룬 <마흔이 내게 준 선물>, 한국 걸출한 인물들의 인생기 <내려올 때 보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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