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우의 걷기명상

'1200km 오헨로' 세번째 걷기명상을 떠나며

1년에 120km씩...10년 뒤 나의 모습은?

글·사진 김종우 교수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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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 계획 없이 오헨로(일본 시고쿠의 88개 절을 환상環狀으로 도는 총 1200km의 순례길)를 처음부터 끝까지 순례자의 마음을 걷겠다는 것이 첫 번째 여정을 시작했을 때의 마음이었다.

 시작은 작년 2월. 틈틈이 걸으면 1년에 120km씩 10년이면 완성한다는 간단한 수식에 따라 막연하게 세운 계획이었다. 10년의 기간을 머릿속에 넣고 상상하며, 항상 꺼내서 확인할 수 있으니 여행 계획 치고는 근사하다. 어쩌면 인생 계획에 더 가깝다. 해가 바뀔 때마다 새 노트를 꺼내 연간 계획을 쓸 때 첫 번째로 한 줄을 쓰는 재미 역시 무시하지 못하는 즐거움이다.

5월 초 연휴를 묶어서 일주일간의 걷기 여행을 떠난다. 올해 첫 장기 걷기여행이다. 오헨로 순례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에 대하여 작년에 가졌던 첫 생각을 끄집어내어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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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헨로 걷기명상 준비물.

 1. 외국으로 걷기 여행을 떠난다. 여행이라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서 나를 돌아보고 자신의 고유한 리듬을 찾고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보는 작업이다. 아무래도 국내에 있다 보면 오로지 걷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일단 연락이 되면 끊을 수도 없는 것이 사회생활이다 보니, 잠시 떨어져 연락이 두절되는 것이 나에게 집중하기에 더 좋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와 환경이 비슷해 먹고 자는 것에서 큰 불편이 없다. 오로지 걷기에 집중하기에 좋다. 물론 10년의 계획이니 먼 나라는 애초부터 곤란했다. 

2. 원 웨이(One way)의 길을 잡는다. 장기간 걷기 여행을 한다면 출발점과 도착점이 명확하게 있는 것이 좋다. 스페인 산티아고순례길에서 마지막에 만나게 되는 대성당은 완주 증서와 함께 오랜 기간 걷기에 대한 보상을 충분하게 해 준다. 오헨로는 1번 절부터 88번 절까지 시고쿠를 완전히 한 바퀴 도는 코스로, 마지막 88번 절 이후 다시 1번 절로 돌아옴으로써 순례를 마치게 돼 있다. 출발점에서의 응원과 도착점에서의 축복은 장기 걷기여행을 하는 이유와 의미를 갖게 해 준다. 
3. 한 번에 5일 이상 연속 걷을 수 있는 코스를 잡는다. 걷기만 하기로 작정하고 여행을 떠난 경우, 첫 날은 아무래도 편안하지 않다. 일상에서 늘 걷는 사람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4~5배 정도로 걷기 때문에 아무래도 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곳 저 곳이 아프다. 발에 물집이 생기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틀 째는 더 힘들 수 있지만, 이후부터는 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그저 자신의 보행 리듬에 맞춰서 걷기만 하면 된다. 항상 마지막 날에는 조금 지친다. 그래도 5일 정도 걸으면 족히 100km 넘게 걸으니,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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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접근성이 좋은 코스를 잡는다. 장기 코스인 경우 한 달 이상 필요하지만. 직장인 같이 1주일 남짓 휴가를 낼 수 있는 경우라면 가고 오는 곳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특히 장거리 순례의 경우, 끊어서 여행을 하는 경우 다음의 출발점은 이번의 도착점인데, 이곳까지 가는 게 용이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 생각과 달리 오헨로는 그다지 좋지는 않다. 이번 여정만 해도 지난 번 도착지이자 이번 출발지인 23번 절 약왕사가 있는 히와사까지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가는 데 6시간 이상 걸린다. 하루를 그냥 날려버리는 셈이다.

20190503b-1.jpg5. 여러 번 나눠가는 것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한다. 한 달여의 시간을 내 한 번에 모든 일정을 끝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1년에 한 번 정도로 나눠서 10년 계획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 것도 나름 매력이 있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바뀌면 우선 다양한 풍경을 볼 수 있고, 세월이 지남에 따른 자신의 변화 역시 관찰을 할 수 있으며, 같이 가는 친구가 바뀌거나 때로는 혼자도 가는 경우가 생겨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게 된다. 올해는 작년에 비해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이지만, 마지막 여정을 마치게 되는 2028년의 나의 모습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 또 그 때까지 건강을 유지해야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6. 긴 기간을 잡음으로써 마음의 안식처를 얻는다. 2018년에 시작을 하였으니 2028년에 여정을 마치게 된다. 2028년까지 내 마음에 하나의 안식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 번째 떠나는 이 시간에도 첫 여행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도 머리 속에 있다. 이렇게 과거를 떠올리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 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나도 많이 변할 듯하다.
걷기 여행은 명상과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자신을 가장 이상적인 상태로 만들어 보는 작업이다. 명상이 호흡과 함께 자신을 찾듯이, 여행이 걷기와 함께 나를 찾도록 도와준다.
명상을 시작하여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평온이 찾아온다. 그저 자신의 호흡에 자신을 앉힌 것 뿐인데 마음은 어느덧 고요함과 따뜻함에 이른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다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걷기를 시작해 하루 이틀을 보내다 보면 자신의 리듬을 찾아주게 된다. 마음 속에 담아 두었던 곳에서 오로지 자신의 리듬에 맞춰 마치 명상 시간에 호흡의 리듬에 자신을 맡기듯 걸음걸이에 자신의 맡긴다. 오로지 걷기에만 충실하다 보면 몸과 마음의 평온과 함께 건강이 찾아오고, 그토록 고민하던 물음에 대한 해답도 얻을 수 있다. 이런 명상과 걷기를 위해 나는 다시 순례길에 오른다.
※ 오헨로 순례길에 대한 2018년 첫 번째, 두 번째 여정은 김종우 교수의 네이버 카페 “김종우교수의 화병클리닉"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hwabyung/4976 [걷기 여행] 나는 왜 걷는가? 39 - 10년의 순례길 오헨로 (1)
https://cafe.naver.com/hwabyung/5068 [걷기 여행] 나는 왜 걷는가? 40 - 10년의 순례길 오헨로 (2) 
글·사진ㅣ 김종우
한의학과 정신의학, 그리고 명상과 기공을 통해 분노와 우울,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치료하는 화병 전문가(강동경희대 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다.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방신경정신과학회, 한국명상학회, 대한스트레스학회, 한국통합의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명상전문가, 여행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명상과 여행을 함께하는 걷기 여행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저서로 <홧병><마음을 치유하는 한의학 정신요법><화병으로부터의 해방><마흔 넘어 걷기 여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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