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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우의 걷기명상

오헨로 순례길에서 얻은 깨달음

"내게 주어진 날이 1주일이라면 나는 걷겠다"

글·사진 김종우 교수  |  편집 홍헌표 기자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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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 걷기명상의 백미

순례길...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 ‘순례자’를 읽는다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로 떠날 것이고, 그 길이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순례에는 스토리가 있고, 그 스토리를 마음에 담고 순례를 한다면 이른바 ‘득도(得道)’에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반복되는 일상에 치인 상태에서 벗어나 나만의 안정과 평화를 얻기 위해 그렇게 순례길을 떠난다. 선거에서 지거나 직장에서 퇴직하거나 때로는 가족과 사별한 뒤 순례를 떠나기도 한다. 그래서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끼리는 “왜 이렇게 순례에 오시게 되었나요?"라고 묻는 것은 일종의 금기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동행하다 보면 자신의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토로하게 된다.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 단지 순례길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영혼 속 이야기를 탈탈 털어놓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치유가 이뤄진다. 순례길은 걷는 길이고, 자연이나 신과 접속하는 길이며, 자기 얘기를 털어 놓는 길이고, 결국 치유로 이어지는 길이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 그리고 일본의 오헨로 순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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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 섬을 한 바퀴 도는 오헨로
 
오헨로(お遍路)는 일본 시코쿠 섬을 한 바퀴 도는 총 길이 1200km의 순례길이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가톨릭의 길이라고 한다면, 오헨로 순례길은 불교의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만들었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쉬움이 있다. 오헨로가 일본의 승려 공해대사의 순례길이라고는 하지만 그가 절대적 신에 속하지는 않기에,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산대사 순례길 정도의 느낌일 수도 있다. 다만 시코쿠라는 큰 섬을 한 바퀴 완전히 돈다는 데에 걷기의 의미가 있고, 일본의 불교에 미친 영향이 크다 보니 불교적 관점에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일본 사람들 가운데 불교 신자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그런지 순례객이 많지는 않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진정한 순례자일 수도 있다. 열 명 가운데 한 명 정도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순례를 여행의 하나로 잡은 세계인들에게는 이곳이 명소임에는 분명하다. 순례길을 도는 재미는 분명 있다. 일단 매 절마다 납경소라는 곳에서 납경을 하고 받는 이른바 인증의 붓글씨는 절을 방문할 때마다 감동을 준다. 입구에 들어가면 먼저 깨끗하게 손을 씻으면서 마음도 청결하게 하고, 종을 울리면서 다시 마음을 다듬고, 본당과 대사당에 참배를 하면서 반야심경을 묵송하고, 그 다음 들르는 납경소에서 멋진 캘리그라프를 받는 순서에 따른 의식은 순례의 가장 멋진 장면이다. 300엔의 비용은 절 방문에 대하여 충분하게 느껴지고, 납경소 옆에서 제공되는 오차를 마시고 한 숨을 돌리면 그 동안의 여정을 보상받고, 다음 여정을 다짐함에 있어서 충분하다. 한없이 걷다가 만나는 절에서 10여분의 의식을 물 흐르듯이 거친 뒤 잠시 휴식 후 또 다음 절로 한없는 이어지는 걷기는 순례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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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개, 많게는 너덧 개의 절을 보게 되는데 각각의 모습에 빠지는 재미가 있다. 도심에 위치한 절은 비록 작지만 오밀 조밀 모든 것을 담으려는 노력이 보인다. 때로는 버스에서 내린 단체 순례객으로 인해 일순간 왁자지껄 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다시 떠나면 적막은 더욱 깊다. 산중에 있는 절은 촘촘한 녹색 숲 속 산사의 모습을 온전하게 담고 있다. 해발 400미터, 심지어 800미터 높이의 산사에 오른다면 그야말로 등산인데, 이런 길을 만나는 것이 도리어 행복할 때가 있다. 물론 모든 절 입구까지 차로 갈 수 있다. 그래서 때로는 고생을 하면서 올라온 사람과 느긋하게 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섞여서 이질적 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 땀에 흠뻑 젖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순례객과 멋진 옷차림에 구두로 단장한 순례객 간에 묘한 신경전이 오가기도 한다. “니들이 순례라는 걸 알아?" 걷는 순례자의 뿌듯함이 송송 맺힌 땀을 통해 더욱 과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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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헨로에서 만나는 일본의 모습
오헨로는 다양한 코스가 펼쳐진다. 도심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논길, 밭길을 지나며, 임도에 접어들어 차와 함께 산을 오르기도 하고, 오로지 등산로만 있기도 있고, 최악의 경우는 국도 옆을 한 없이 차와 같이 걸어야 한다. 터널을 만나면 거의 1km를 매캐한 매연과 함께 하기도 한다. 차로부터 전혀 보호 받지 못하여 움찔하기도 하지만, 이어지는 호젓한 바닷길을 걷고 있노라면 앞의 길을 용서하게 된다. 그래서 지도를 자세히 검색하여 차와 나란히 정처 없이 걷는 코스는 걷기 순례에 위배가 된다고 하더라도 잠시 기차와 버스로 대체하기도 한다. 옛 순례자도 이렇게 매캐한 매연과 쌩쌩 옆으로 다니는 차의 위협을 감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렇다면 최고의 길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농촌 마을을 옆으로 보면서 뚝방 길을 걷는 것이다. 자연의 모습과 사람 사는 모습이 절묘하게 섞여있을 뿐 아니라 한참을 걷다가 마주치는 주민으로 부터 “깐빠레" 라는 응원을 듣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간혹 지역 주민이 준비한 오셋타이라는 선물을 받는 재미가 더해진다면,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길이라는 생각에서도 벗어나게 된다.
오헨로에서 가끔 마주치는 오셋타이는 순례객에 대한 경의와 격려를 주민들이 표하는 것이다.열쇠고리 같은 간단한 선물이나 국수와 과일 같은 음식의 봉양인데, 순례의 보람을 느끼게 해준다. 일본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헨로는 늘 맛집과 온천으로 순례를 보상한다. 한 고개 넘어서 만나게 되는 맛집, 그리고 저녁을 보낼 수 있는 온천이 있는 곳이 일본이다. 특히 온천은 그날의 피로를 완전히 날리고 그야말로 푹 자게 해주고, 다음날 언제 그랬냐 싶게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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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을 만나는 재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들이 조용하다고는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이들은 매우 수다스럽다. 간혹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은 우리가 외국인임을 알면서도 쉴 새 없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간혹 아는 단어나 문장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면 대화 전체를 이해한 것으로 여기고 더욱 신나게 말을 하는 그들을 보게 된다.
시골에서 자연과 벗하고 사는 이들의 마음은 여유롭고 선하다. 또한 그들은 오헨로가 있는 자기 고장에 대하여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오헨로를 걷는 순례객에도 그만큼 관심과 애정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깨달음을 위한 질문 2가지.
오로지 걷는 행위만으로 나의 정신은 건강해지는가?고민을 안고 걷기 여행을 떠나면 해결되는가?
순례를 끝나면 한가지 씩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어떤 깨달음인가? 사람마다 다르니 그 사람의 마음을 알 길은 없다. 그렇다면 이번 순례에서의 나의 깨달음이란? “나에게 주어진 날이 1주일이라면 나는 걸을 것이다." 
※ 오헨로 순례길에 대한 2019년도 여정은 김종우 교수의 네이버 카페 “김종우교수의 화병클리닉"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hwabyung/5373

 

글·사진ㅣ 김종우
한의학과 정신의학, 명상과 기공을 통해 분노와 우울, 불안 등 정신적 문제를 치료하는 화병 전문가(강동경희대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다.경희대학교한의과대학 교수.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방신경정신과학회, 한국명상학회, 대한스트레스학회, 한국통합의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명상전문가, 여행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명상과 여행을 함께하는 걷기 여행을 꾸준히 실천하고 있다.저서로 <홧병><마음을 치유하는 한의학 정신요법><화병으로부터의 해방><마흔 넘어 걷기 여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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