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해피 레터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어느 조카 며느리의 세배

홍헌표 편집장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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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보따里 동호회 정모 때 회원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설날 아침 그 회원이 겪은 일입니다. 친정 어머니와 오빠 내외, 1~2년 전 결혼한 아들 내외와 조카 내외가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친정 어머니와 함께 아침 일찍 일어나 음식을 차린 뒤 한복을 갈아입고 세배를 받을 준비를 했답니다. 

그런데 늦게 일어나 세배를 하러 나온 며느리와 조카 며느리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빵~ 웃음이 터졌습니다. 조카 며느리는 찢어진 청바지를 입었고, 며느리는 잠잘 때 입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 거죠. 어른이지만 예의를 갖추려고 화장까지 하고 곱게 단장한 친정 어머니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답니다. “세상에 살다 살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조카 며느리 세배를 다 받아본다"고 웃음 섞인 농담을 하며 상황을 급히 마무리했는데, “지 마누라들 역성 드는 자식들을 보니 더 어이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 얘기를 함께 들었던 50~70대 회원들의 표정은 다양했습니다. “참 싸가지 없는 젊은 것들"이라고 혀를 차는가 하면, “세대 차이를 어쩌겠어"라고 체념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처럼 ‘황당하다’, ‘참 못 배웠구나’ 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꼰대’ 소리를 듣는 50대 이상이겠지요. 20~30대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솔직히 궁금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직접 겪은 그 회원은 심리상담사다운 해석과 자기 처방을 내렸습니다. “설날에는 단정하게 옷을 입고, 경건한 마음으로 어른들께 세배를 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내 자신에게는 당연한 생각이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아예 그런 개념조차 없을지도 몰라요." 그런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야단을 쳐봐야 아무런 실익이 없이 관계만 나빠지고, 결국 자기 자신만 스트레스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니까 마음을 싹 바꿔 먹게 되더라는 것이죠. 본인의 마음 건강을 위해 ‘처음 보는 못 볼 꼴’을 웃으며 넘어가 주기로 선택한 겁니다.
그 회원은 내친 김에 한 가지를 더 행동에 옮겼습니다. 아침 식사 후 설거지를 며느리들에게 시키지 않은겁니다. “나중에 내가 식기세척기로 할 테니 너희들은 손도 대지 말라"고 한 뒤, 온 식구가 식탁에 둘러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나눠 먹으며 2~3시간 이야기를 나눴답니다.
“며느리들에게 설거지를 시켜봐야 제대로 할 리가 없으니 어차피 내 손이 가야 하고, 지 마누라 손에 물 묻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아들 모습을 보면 아들도 며느리도 미워질 것 같으니 차라리 내가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지요."
결과는 좋았습니다. 조카 며느리는 자기 집에 돌아가면서 “고모님, 오늘 너무 재미 있었어요. 자주 놀러 올게요"라고 말했고, 아들도 카톡 문자로 “진짜 행복했던 명절"이라고 썼다고 합니다. 그 회원 나름 만족한 시간이었다고 합니다. 혼자 4시간 동안 설거지를 했어도 그 이상의 보람, 행복감을 느꼈으니까요.
‘아랫사람이 설거지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지. 도대체 요즘 아이들은 왜 그러지?’ 50대 이상이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고정 관념을 고집했다가 결국 자신만 손해(아이들에 대한 원망과 갈등적인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관계 단절 위기)라는 판단을 하곤, 심리상담사인 그 회원은 과감하게 자신의 고정 관념을 꺾기로 마음을 바꾼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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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한 번 바꾸면~.’ 10년 전 암 투병 초기에 제가 틈날 때마다 읊조렸던 문장입니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받더라도 가볍게 털어버리기 위해서는 마음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그 첫걸음이 ‘마음 바꾸기’였습니다.

‘내가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가치관, 일에 대한 관점, 삶의 목표 등이 관계 속에서 타인과 충돌할 때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고,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내 관점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말자! 다름을 인정하고, 내 사고의 틀을 좀 더 탄력적으로 만들어보자!’

제 자신의 몸맘 건강, 삶의 질, 행복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이 제게도 주변 사람들에게도, 수많은 관계에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요즘도 그런 생각 습관을 유지하려고 애씁니다. 갈등 상황,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제 진짜 욕구가 뭔지 알아차리기 위해 잠시 생각을 멈추고 바라보는 연습을 합니다. 마음을 바꾸고, 나를 찬찬히 바라보기! 그게 행복의 첫걸음인 듯 합니다. ■
글ㅣ 홍헌표
조선일보 기자,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거쳐 현재 ‘마음건강 길’ 편집장을 맡고 있다.2008년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았으며, 암 재발을 막기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몸 습관, 마음 습관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암투병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 <암과의 동행 5년>을 썼으며 라이프 코치로 공공기관, 주요 기업 임직원 대상 강의, 코칭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암 치유와 건강을 위해 만든 웃음 동호회 ‘웃음보따里’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몸맘건강 네트워크 ㈜힐러넷 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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