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해피 레터

우리 아이도 '스카이 캐슬'에서 고통받는 건 아닐까

홍헌표 기자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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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 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입니다. 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너도 나도 “스캐 스캐" 하는 걸 보니, 저도 조만간 보게 될 것 같습니다. 스토리는 여러 사람에게서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스카이 캐슬에 사는 부모들은 자식 사랑을 강조합니다.스카이 캐슬은 현실에도 존재합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치동 엄마’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엄마들 역시 아이들이 명문대학에 가고 출세를 하고 부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게 자신들의 욕망이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아이들의 꿈을 키워주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자신들의 삶도 망가뜨리지만, 그걸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심리상담사이자 라이프 코치인 친구를 도와 심리상담센터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심리 상담이 필요한 10~20대 청소년을 만나 보면 사랑과 욕망, 집착을 구분하지 못하는 부모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잘 해준 죄 밖에 없다"고 억울해 하고 아이들은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호소합니다.
‘스캐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을 지난 해 만났습니다. 자식을 번듯하게 잘 키우고 싶었던 아빠의 순수한 사랑이 왜 아들을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그리고 두 사람은 어떻게 불행에서 벗어났는지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그에게서 들었습니다. ‘백점 아들 육식동물 아빠’(2018년 조윤커뮤니케이션 刊)의 저자 최준영 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대치동 엄마’가 아닌 ‘아빠 매니저’인 점만 다를 뿐, 최준영 씨는 영재 아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능력을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한편으론 닮고 싶은 능력자입니다. 아들 정혁 군은 생후 21개월 만에 책을 읽고 수학 천재 기질을 보이고, 음악적 자질도 뛰어났습니다.
대기업 해외 지사로 발령 난 아빠를 따라 간 영국, 미국에서 수학 영재의 길을 걷더니 국내 최연소 토플 만점, 한국인 최초 미국 수능시험 ACT 만점이라는 기록으로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혁 군은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도 갈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의지로 미국 수학 영재 대학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의 하비 머드 칼리지를 선택, 수학 천재의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바람직하고 성공적인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정혁 군이 목표로 삼았던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하겠다며 갑자기 귀국한 겁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가족과 눈도 못 맞추고 극심한 대인 기피증과 우울증, 틱 장애가 나타난 것입니다. 아들을 영재로 키웠다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고, 아들이 수학 분야에서 이름난 교수나 학자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버지 최씨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들이 그렇게 된 게 바로 아버지 때문이었다는 심리상담 결과는 그를 충격에 빠트렸습니다.
천재 아들의 성장 과정에는 아버지의 스파르타 식 관리가 있었습니다. 아들의 소극적인 성격조차 뜯어고치려 했던 아버지는 독일 파견 근무로 인해 아들과 떨어져 지내는 동안에도 원격으로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했습니다. 이메일로 아들에게 과제를 주고, 일과를 감시하는(?) 일에 보람을 느꼈다고 합니다. 미국 유학생활 중에도 아들은 아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관리 당한 천재 아들은 미국 유학 중 홀로 결정하고 어려운 일을 헤쳐 나가야 하는 현실에 맞닥뜨리자 당황했습니다. 몸만 독립했을 뿐 정신적으로 독립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최준영 씨는 자신이 아들을 망쳤다는 심리상담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아들아, 그동안 왜 발버둥치지 않았니? 못하겠다고 왜 몸부림 한 번 치지 않았어"라며 참회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줍니다. 아들이 연상의 여자 친구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하고, 인디 밴드 활동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비로소 아들 정혁 군은 “살아 오면서 이처럼 행복했던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청년들의 마음의 병’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청년 우울증이 증가하고 자살 충동을 느끼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나 홀로 조기유학으로 인한 적응 장애, 직장 왕따, 은둔 형 외톨이, 진단명 없는 분노 장애, 인간 관계 단절 등의 현상이 나타납니다.
서울대 최인철 교수는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 마음의 병을 앓는 이유를 ‘고도 경제 성장 시대를 살아온 교육 수준 높은 부모 세대의 압박’에서 찾고 있습니다. 최준영 씨가 바로 그런 부모 세대의 모습으로 살아 왔고 지금 우리 나라의 많은 부모들이, 특히 엄마들이 자식들의 삶에 자기 인생을 걸고 있습니다. 그 끝이 행복이 아니라 불행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 채로.
우리 아이들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들이 해답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부모의 이루지 못한 꿈, 욕망을 강요하는 대신 지지, 격려, 사랑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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