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헌표의 해피 레터

고향 엄마의 소울푸드 '감자옹심이 조개죽'

글·사진 홍헌표 편집장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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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한 번씩 보는 ‘채널 고정’ TV 프로가 하나 있습니다. 최불암 씨가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소울푸드를 소개하는 ‘한국인의 밥상’입니다. 먹방의 유명 셰프도 아닌, 어느 이름 모를 시골 할머니가 쪼글쪼글한 손으로 만들어 내는 한 끼 밥상인데, 보기만 해도 입안에 군침이 돌고 엔도르핀이 팍팍 돌게 해줍니다.

 저도 지난 주말, 짧은 휴가로 떠난 고향집에서 ‘한국인의 밥상 - 우리엄마 편’을 찍었습니다. 제가 직접 잡은 조개와 뙤약볕에 농사 지은 감자, 그리고 텃밭에서 막 따온 호박 등을 넣어 만든 감자옹심이 조개죽입니다. 어린 시절 친지들까지 다 불러 한 그릇씩 나눠 먹던 바로 그 소울푸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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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모래를 헤집은 뒤 모래바닥 깊숙한곳에 숨어 있는 조개를 발가락으로 집어올리는 기분은 경험해봐야 안다.

 제 고향은 강원도 삼척의 작은 바닷가 마을입니다. 맹방(孟芳)이라는 정감 넘치는 이름을 가진 동네죠. 솔숲을 지나 걸으면 집에서 5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맑고 푸른 동해 바다가 있습니다. 여름이면 그 바다에 나가 헤엄을 치고 조개를 잡았지요. 트위스트 치듯 하며 발로 모래를 헤집으면 자갈밭의 자갈처럼 조개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두 시간이면 양동이 하나 가득 조개를 잡던 추억을 되살려 조개잡이에 나섰습니다.

조개를 담을 그물망 하나 달랑 들고 바다로 뛰어 들었습니다. 수십년 단련된 ‘발가락 기술’을 발휘했지요. 모래 깊숙이 숨어 있는 조개를 찾아내려면 엄지 발가락을 모래 바닥 10cm 아래까지 깊숙하게 넣어 수색 작전을 펼쳐야 합니다.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발가락 끝에 굵은 조개의 몸체가 느껴지는 짜릿한 감동은 경험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왼발 엄지와 검지 발가락 사이에 조개를 끼워 올리는 작업은 제게 아주 쉬운 일입니다. 그렇게 해서 잡은 조개가 100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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뙤약볕에 캔 감자를 강판에 간 뒤 물기를 빼야 제대로 된 감자 옹심이를 만들 수 있다.

 감자옹심이 조개죽은 먹는 사람에겐 그냥 죽 한 그릇이지만 손이 참 많이 가는, 그래서 정성이 가득 담긴 음식입니다. 우선 조개는 양동이에 떠온 바닷물에 하룻밤 해감을 시켜 잔뜩 머금은 모래를 뱉아내게 해야 합니다. 그 다음엔 칼로 입을 앙 다문 조개를 칼로 벌려서 살을 발라내고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칩니다. 바다 내음이 진한 조갯살 데친 물은 죽을 끓을 때 핵심이 되는 육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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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뜰 솥에 잘게 다진 조갯살과 찹쌀, 감자옹심이, 채썬 호박을 넣고 장작불로 끓이는 일은 삼복 더위에 고행일 수도 같지만, 우리 엄마에게는 소울푸드를 상에 올리는 행복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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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수십년 동안 뒤뜰을 지켜온 솥을 장작불로 데우고 다진 조갯살과 찹쌀을 육수에 넣어 끓이는 동안, 저는 감자 껍질을 벗기고 강판에 감자를 갈았습니다. 감자옹심이를 만들려면 수분을 없애야 하는데, 엄마만 할 수 있는 고난도 작업입니다. 하얀 천에 갈아놓은 감자를 넣고 손의 스냅으로 꾹꾹 눌러 수분을 짜내야 합니다.
솥에서 찹쌀이 익을 때쯤 감자옹심이를 한 조각씩 떼 펄펄 끓는 솥에 투하하고 채 썬 호박을 집어 넣고 나면, 이제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전국에 폭염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삼복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날, 목에 수건을 두른 엄마는 기도하듯 죽이 끓는 솥 옆을 지킵니다. 여전히 철부지 같은 50대 아들에게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주려는 몸놀림에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엄마는 나무 국자로 죽을 떠 잘 익었는지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 맡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시간을 잽니다. 시계도 없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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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판에 갈아 물기를 짜낸 감자 전분에 소금만 넣어 만든 감자전. 고향 엄마의 손에서만 만들어지는 소울푸드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는, 우리 엄마의 손맛이 담긴 감자옹심이 조개죽이 마침내 완성됐습니다. 탁자 위에 소박한 밥상이 차려졌습니다. 반찬이라곤 고추를 잘게 썰어 넣은 매콤한 양념 간장과 묵은 김치뿐입니다. 죽 한 숟가락을 떠 넣는 순간 입에 퍼지는 바다 내음과 쫄깃쫄깃한 감자옹심이, 있는 듯 없는 듯 씹히는 부드러운 조갯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한끼 밥상이었습니다.

별미를 만들 때면 근처 사시는 당숙들을 불러 모으시던 우리 엄마. 이번에도 어김 없었습니다. 딱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식탁 한 가운데 앉아 “이게 별미야~" 하고 조용하지만 힘있던 아버지의 목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 어디에 가도 먹을 수 없는 우리 엄마의 소울푸드 하나로 이번 휴가는 충분했습니다.
글·사진ㅣ 홍헌표
조선일보 기자, 헬스조선 취재본부장을 거쳐 현재 ‘마음건강 길’ 편집장을 맡고 있다.2008년 대장암 3기로 수술을 받았으며, 암 재발을 막기 위해 면역력을 높이는 몸 습관, 마음 습관을 꾸준히 지키고 있다.
암투병 에세이 <나는 암이 고맙다> <암과의 동행 5년>을 썼으며 라이프 코치로 공공기관, 주요 기업 임직원 대상 강의, 코칭 상담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1년 암 치유와 건강을 위해 만든 웃음 동호회 ‘웃음보따里’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몸맘건강 네트워크 ㈜힐러넷 대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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