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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헌표의 해피 레터

췌장암 투병 중인 친구와의 만남

밝은 얼굴 보고 안심...자신을 위한 삶의 모습에 박수를

홍헌표 편집장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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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전 대장암 투병 시절 매일 걸었던 서울성곽길.

몇 번의 전화 통화 후에 어제 처음 만난 고교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이과, 저는 문과였고 고향도 달랐기에 학교 다닐 때도 몇 번 만나질 못했을 겁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고교 동문회에도 자주 나갈 형편이 못 되었으니 어제 처음 만난 것도 당연합니다.

 

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는 암(癌)입니다. 졸업 동기생과 공유하는 SNS에 암 환우의 면역력 회복에 좋다는 차가버섯 분말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그 친구가 제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저는 2008년 대장암 3기 판정, 그 친구는 2018년 췌장암 4기 판정. 췌장암은 암 중에서도 발견이 늦은 편인데다 약물 치료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다른 암보다 낮은 '고약한 암'입니다.
전철을 타고 친구 회사 사무실로 가는 동안 제 힘들었던 투병 장면과 함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암 투병 중인 지인이나 친지를 만나면 암 진단을 받고 수술 등 치료하는 과정을 묻고, 지금 몸 상태는 어떤지를 묻고, 잘 될 거라고 꼭 완치될 거라고 위로합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똑 같은 질문을 받고 똑 같은 답변을 하는 일이 고역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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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마음을 최대한 편안하게 해주자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현실은 냉정하게 인정해야 하겠지만, 그 친구가 살아온 삶,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을 부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뜻 밖이었습니다. 친구 표정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밝았습니다. 미리 얘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췌장암 치료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 친구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나서야 머리카락이 좀 빠졌고,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 색이 조금 검게 변했다는 걸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암(癌)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우리 대화는 매우 유쾌했습니다. 친구는 충청도에 생산 공장을 갖고있는 중소기업 규모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에 열정적으로 매달렸을 때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고, 스트레스도 적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난해 암 진단 후 복잡하고 스트레스가 많은 업무는 정리했지만, 회사 일은 계속 한다는 말에 내심 놀랐습니다.
보통 암 진단을 받으면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원인을 찾고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을 갖는 게 일반적인 패턴인데, 친구는 다른 방법을 선택한 겁니다. “처음 진단을 받고 시골 고향집에 가서 지낸 적이 있는데, 나한테는 안 맞더라. 텃밭 일도 하고, 다 내려놓고 쉬려고 해봤는데, 오히려 답답하고 마음이 힘들어지더라고."
그래서 자신만의 생활 패턴을 만들었답니다. 항암 치료, 딱 기분 좋을 만큼만 시골집에 가서 지내기, 회사 일은 성취감과 보람을 느낄 만큼만 하기, 규칙적인 운동, 2~3일에 하루는 골프 등 휴식을 겸한 취미 활동.
‘암 치료에 최선을 다 하면서도, 일상과 생각이 암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참 멋진 친구입니다. 하루에 열 번 이상 웃고,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거라면 만사 제쳐두고 먼저 해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동안 맡겨진 삶을 살아오느라 애쓴 자신에게 아낌 없이 선물을 주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친구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워질 거라 믿습니다. 암도 떠날 수 있습니다.
제가 쓴 책 제목이 ‘나는 암이 고맙다’입니다. 친구도 그렇게 말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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