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히말라야에서 쓴 편지

각박한 풍요 속에 꿈을 잃어버리다

이주향  |  편집 명지예 기자  2019-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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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는 바람입니다. 살랑살랑 사랑의 기척들을 전합니다. 마음은 풍경처럼 흔들리며 마음의 울림인지, 바람의 흔적인지 모를 맑고 아늑한 파문을 만듭니다.

편지, 언제 써보셨는지요? 우리는 왜, 편지를 쓰고 싶은 찰랑찰랑 샘물 같은 마음을 잃어버린 걸까요?

히말라야에서 박범신 선생이 바람의 말을 듣고 편지를 썼습니다그것이 비우니 향기롭다입니다히말라야그 과묵하기만 한 원시의 산이 바람에 실어 보낸 말들은 시리도록 청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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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숨찬 것들이 굼실굼실 움직이고

과한 것과 모자란 것이 따로 없으니

초조하거나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기야 광대한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리는 것이나

달구지 속도로 흐르는 것이나

구름에 달 가듯이 걸어가는 것이나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는 아마 도토리 키 재기에 목숨 걸게 만드는 현대사회의 잔인한 경쟁 구조가 두려웠나봅니다. 단선적인 속도의 힘에 짜증이 났고, 그런 것들이 가져다준 각박하기만 한 풍요에 싫증이 났나 봅니다.

설명할 필요도 없이 박범신 선생은 참 많은 것을 가진 소설가입니다. 그런 그가 고백합니다. ‘나는 내 가슴 속 폐허 때문에 이곳에 왔다. 그리고 히말라야에서 그는, 자신이 가진 많은 것들을 내어 주고서라도 기어코 찾고 싶은 폐허 이전, 옛 꿈들의 흔적을 만난 모양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운 그대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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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어둠은 아주 단단합니다전기도 없고, 오늘따라 달빛, 별빛도 없습니다아래층 부엌에서 노랫소리가 들립니다. 처음엔 무심코 들었습니다그러다가 곧 그 노래가 한 사람이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차례대로 부르며 돌아가는 돌림노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노래는 한 시간도 넘도록 계속 됐습니다그들의 노래는 길고 따뜻했습니다간간이 웃음소리와 잡담이 돌림노래 사이로 섞여 들어왔습니다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도 서로 마주 앉기보다 일렬로 앉아 텔레비전을 향해 경배 드리는 우리네 가정의 밤풍경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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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박범신 선생의 그리운 그대는 누구일까요? 궁금해졌지만, 이거 잘못하면 내가, 남의 소중한 연애편지나 몰래 훔쳐 읽는 초라하고도 가난한 군상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져서 책을 덮었습니다. 땅엔 제비꽃 천지는 라일락 향기인데, 나는 누구에게 편지를 쓰고 누구와 함께 돌림노래를 부르고 싶은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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