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치유하는 책읽기

음식을 먹는 행위, 그 자체도 수행

천천히, 씹는 놈을 만날 때까지, 천천히

이주향  |  편집 최인선 기자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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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말라! 허기야말로 우리가 즐겨야 할 최상의 반찬이다!"

아침엔 식욕이 없다는 사람도 많지만, 다행히 해 뜨면 배가 고파 얼른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밥이 잡곡밥이면 찬은 하나뿐이어도 됩니다. 겨울엔 묵은 김치나 무 숙채, 고추장 더덕을, 여름엔 호박이나 가지, 감자를 즐겨 먹습니다. 국은 좋아하지 않아 아침부터 국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점심은 주로 밖에 나와서 지인들과 함께 하기 때문에 내 뜻과 관계없이 푸짐해지지만 저녁 약속은 안 하는 것이 원칙이고 아침보다도 더 간단히, 집에서 먹습니다.

그렇게 먹으면 질리지 않느냐고 묻는 이도 있지만 푸짐한 점심 밥상에 질리는 일은 종종 있어도 초라하다면 초라한 아침상이나 저녁상에 질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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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밥상으로 충분히 행복해 하는 나를 두고 집에서는 도인이라 부릅니다.
도인이 아니면 그런 밥상 같지 않은 밥상을 두고 그렇게 맛있게 먹을 수 없다는 거지요.
하지만 그것은 도인의 식단도 아니요, 웰빙을 의식한 때문도 아닙니다. 그야 말로 식성일 뿐입니다.

내 식성과 내 밥상에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본 일도 없습니다. 오히려 먹을 게 너무 많아 탈인 세상에서 산해진미를 좋아하지 않는 내 식성이야말로 군살이 붙을 이유가 없는 좋은 식성이라고 생각해왔지요. 문제가 있다면 내 식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식당의 식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당에서 내오는 밥상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은 며칠 굶은 사람도 만족시킬 만큼 너무 푸지다는겁니다. 더구나 그렇게 푸진 밥상 위의 찬들을 모두 화학조미료로 맛을 냈을 경우, 식사 후의 그 텁텁함이란!

또한 밥은 대게 새하얀 쌀밥.

점심은 늘 배부르게 먹는 나도 새하얀 쌀밥 앞에서는 숟가락이 멈칫거리게 됩니다.
마치 밥에 어떤 독이라도 들어갔나, 검사하는 검사원처럼 깨작거립니다.

 

아침과 저녁은 기분좋게 밥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점심엔 찬 위주의 식사를 하기도 합니다.
그 새하얀 독을 먹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말입니다.
그것이 내 몸을 지키는 건강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수경스님에게 혼나기 전까지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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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의 어느 백반집에서 스님과 처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도대체 이렇게 차려 오면 무엇이 남나 싶을 정도로 5천 원짜리 밥상은 반찬들로 푸짐했죠.
그 앞에서 스님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밥상을 받은 것처럼 진중했습니다.
먹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찬찬히 보니 드시는 속도가 느립니다. 그런데 느리다는 느낌보다는 기분 좋게 먹는다는 느낌이 먼저 왔지요.
그가 손을 대지 않은 것은 갈치조림과 마늘 장아찌였습니다.
기독교인인 동생이 갈치가 맛있다며 권해 드릴 때에도 맛있는 사람이나 많이 드시오하며
차분히 거절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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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제일 잘 드신 음식은 묵은 김치였습니다. 우리는 손도 안 댔는데 드디어 종지가 바닥이 났습니다. 내가 주인에게 더 달라고 하자, 스님은 손을 내저어 더 가져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다른 찬도 많다는 거였습니다. 마지막 빈 그릇을 물에 헹구어 마실 때에는 더 드셔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만큼 잘 드셨고 그만큼 깨끗하게 드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허기도 아니었고 식성도 아니었습니다.

식사하는 태도까지 그것은 수행의 결과였으며 수행 그 자체였던 거지요.

그 이후에도 좋아한다고 더 시키는 일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일도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자기 앞에 나온 밥상에 감사하고 충실하게 받는 법을 아는 수행자였습니다.

그런 반면 나는 언제나 밥을 남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게 흰쌀밥은 보약이 아니라 독약이라는 이유로.

어느날 스님께 처음으로 때문에 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렇게 밥을 남기는 거요?"
흰밥이라........"
흰밥이 어때서?"
흰밥은 독약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저런... 그 생각이 독약이네. 그런 마음으로 반야심경을 쓰고 서장을 공부한단 말이오?"
“........."
밥이 생명인데, 생명을 모신다는 마음이 있으면 그렇게 타박할 수 있나!
그 밥을 먹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시오?“

스님은 무표정했습니다.
무표정한 얼굴에 빛나는 눈빛은 무심하고도 신중했지만 그럴수록 나는 난감했습니다.
이미 불편해진 속으로 꾸역꾸역 밥을 넘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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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내 식성과 식습관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음식이 내 살과 피를 이루는 힘의 원천이라고만 생각했지 먹는 행위 그 자체도 수행이라는 걸 몰랐던 겁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먹는 게 중요해. 천천히 꼭꼭씹다 보면 씹는 놈을 만날 수 있거든.
그 놈을 자각하면서 먹으면 독약이 어디 있나, 다 보약이지.
이 밥 한 공기를 30분 이상 걸려 천천히 먹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무슨 일을 해도 되지.
그런 상황에서는 살인을 해도 살인이 아니오, 그게 바리공야의 정신이오.“

스님은 먹는 일에서 신성을 찾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신성을 찾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홀로 밥상 앞에 앉으면 문득문득 생각합니다.

천천히, 씹는 놈을 만날 때까지, 천천히!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 부끄럽네.
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삼아
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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