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치유기

14친구 말 한마디에도 무너져 버리다

우울증 치유, 심리적 추락을 극복하라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2-06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술자리를 조심하라

회사에 출근한 지 보름 정도 지났을까. 참으로 오랜만에 동창 친구 몇 명을 불러내 술자리를 가졌다. 이런 평범한 만남조차도 내겐 꿈만 같았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친구들과 만남도 어려운 상태였다. 물론 이들은 내 상태를 잘 모른다. 힘든 상황이란 것은 알지만 그런가보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정신적으로 환자였고,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였다. 이런 사실을 그날 나도, 친구들도 잊고 있었다. 내가 잘 가는 이태원 고깃집에 모여 소주를 마셨다. 화기애애했다. 그러다 작은 언쟁이 일어났다. 오랜 친구들 사이에서 늘 일어나는, 그렇고 그런 언쟁이었다.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그동안 품었던 섭섭함을 직설적으로 토로했다. 그냥 둘이 이야기하도록 놔두면 될 터인데 중간에 내가 끼어들었다.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러나. 오늘같이 좋은 날 그냥 한잔하자."

잔뜩 기분에 들뜬 내 말은 물론 호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은 그렇지 않았다.

“네가 뭔데 나서는 거야. 너도 똑같은 놈이야."

“아니. 내가 뭐…."


그 친구는 내게도 화풀이를 했다. 섭섭함을 토로하고 공격했다. 예전 같으면 그냥 껄껄 웃으면서 넘어가거나, 아니면 야무지게 한마디 해주고 끝냈을 일이었는데… 나는 평소보다 훨씬 적게 술을 마셨는데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금방 취기가 올라 있었다. 그만큼 몸이 허약한 상태였다. 게다가 심리적으로 무방비 상태였다. 상대방의 다소 비판 섞인 말이 내게는 안면을 강타하는 강펀치와 같았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었다.

나는 한마디도 제대로 받아치지 못하고 그냥 상대방의 질타를 고스란히 맞고만 말았다. 워낙 기가 죽어 있어서 뭐라고 대꾸할 말도, 기운도 없었다. 술자리가 파하고 비몽사몽 집으로 돌아왔다. 후회됐다. 괜히 술자리를 만들었다 싶었다. 매우 불쾌했다.

이튿날 아침잠에서 깨어나니까 예전의 지옥 같은 심리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어젯밤 상황이 선명하게 떠오르며 그의 말이 비수같이 내 가슴에 내리꽂혔다.


“넌 나쁜 자식이야."


그날 나는 온종일 누워 끙끙거리며 힘들어했다. 주말인데 몸과 마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그동안 운동으로 좋아졌던 컨디션이 곤두박질쳤다. 이럴 때는 무엇을 하든, 어떤 자세로 누워 있든 힘들었다. 암 환자의 고통이 바로 이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식이 있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힘들었다. 그 고통은 겪은 사람만 안다. 오직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 외에는 삶에 어떠한 욕망도 일어나지 않았다.

전혀 회생이 될 것 같지 않은 절망감에 휩싸였다. 그러다 간혹 심장이 쿵 내려앉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면 저절로 몸이 움찔하면서 움직였다. 인기 그룹 AOA의 노래 제목으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한 ‘심쿵해’란 표현에는 ‘멋진 이성을 만나면 심장이 쿵쾅쿵쾅 내려앉는다’는 낭만적인 의미가 있다. 그러나 당시 나의 ‘심쿵해’는 절벽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질 때 느껴지는 공포감 같은 것이었다.

11.jpg


‘이러다가 혹시 파킨슨병으로 발전하는 것 아냐?’

또다시 ‘심쿵’해졌다.

뇌 기능 이상으로 비롯되는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인 파킨슨병은 가만히 있어도 몸이 저절로 떨리는 병이다.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처럼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발작적으로 떨림 현상이 일어난다. 파킨슨병 환자의 절반가량이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 새로운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날은 가족들과 저녁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나는 억지로 몸을 추슬러 가족들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초여름 오후 신록의 햇살을 맞으며 강남 번화가를 걷는 나의 마음은 한없이 어두웠다. 현기증이 났다. 저녁 식사는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너무 피곤해서 가족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식당 밖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안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럴 정도로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생각을 놓아야 마음이 숨을 쉰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다. 원래 나는 산을 좋아했다. 주말이면 산행을 했다. 번잡했던 마음도 등산을 하면 홀가분하게 정리되곤 했다. 그러나 이날은 이틀 전 충격 때문에 맥이 빠진 채 소파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산을 싫어하는 아내가 도리어 산에 가자고 졸랐다.

“자꾸 움직여. 운동을 해. 그래야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오지."

그녀의 손에 억지로 이끌려 버스를 타고 정릉에 도착했다. 예전 같으면 북한산 능선으로 바로 올라갔을 텐데 우리는 주변 둘레 길을 걷기로 했다. 그 둘레 길을 걷는 것도 내겐 힘이 들었다. 20분 걷고 쉬고, 또 20분 걷고 쉬고…. 그렇게 둘레길 5킬로미터를 3시간이나 걸려 걷고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22.jpg

마음을 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쉴 수 있는데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마음을 놓는 순간 금방 부정적 사고가 침투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놓지도, 쉬지도 못하는 이 역설. 이 역설을 현명하게 극복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너무나 많은 생각과 욕망 그리고 상처를 지니고 살아왔다. 

새삼 세속을 등지고 불가에 귀의한 스님들의 심정이 이해될 듯했다. 산속 외딴 암자로 들어가 결사적으로 참선 수행을 하는 이유를 다소 알 것 같았다. 자신들에게 찾아오는 온갖 번뇌, 잡념과 싸우며 정신적 깨달음과 마음의 평정을 찾으려는 그들의 노력. 바로 지금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 쓰는 나의 노력과 무엇이 다를까.

불자들은 이 모든 것이 그들이 전생에 지은 업보(業報) 탓이라고 말한다. 나도 결국 내 인생에서 행한 생각과 행동의 결과에 대해 후회하고 고민하고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가. 먼 옛날이었으면 나도 홀연히 세속을 떠나 입산수도의 길로 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선 지금 이 순간만 넘겨라

월요일 오후에 바로 병원을 찾았다. 원장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극복하라"고 했다.

“치료를 등산에 비유하자면 정상(완쾌)에 오르기까지 여러 가지 힘든 일이 발생합니다. 그때 포기하면 일종의 심리적 절벽이 생겨 평생 병원이나 약물 신세를 면치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내게 평소 투여하던 항우울제의 분량을 두 배로 늘려주었다. 어차피 이 싸움은 장기전이다. 심리적으로 넘어질 때도 있다. 이때 다시 올라서려는, 활기를 되찾으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여기서부터는 환자의 의지다. 차에 시동도 걸렸고 옆에 조교도 있지만 삶의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스스로 저 언덕을 다시 올라가야 한다. 나는 가속페달을 밟고 이를 악물었다.

 

약물치료, 운동에 이어 우울증 치료의 세 번째 단계는 ‘긍정적 사고방식’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인지행동치료의 하나로 매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긍정 훈련’을 강조한다. 극심한 절망감과 자기혐오에 빠진 환자들에게 긍정을 불러일으키는 훈련으로 부정적 사고를 극복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환자에게 매일 반복하게 하는 실행 리스트는 대략 이렇다. 운동, 명상 및 좋은 생각 떠올리기, 기도하기, 성경이나 불경, 논어 등 양서(良書) 읽기, 음악 듣기, 감사하기, 웃기, 입으로 남을 비판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지 않기, 화내지 않기, 자기 전 하루 즐거웠던 일 다섯 가지 떠올리기 등등….

33.jpg

 

인생은 희로애락

인생에는 햇볕도 나고 비바람도 분다. 폭풍우가 내리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눈부신 햇살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여름이 지나면 가을, 겨울이 찾아온다. 자연법칙이 이러하듯 우리의 삶이나 마음의 상태도 늘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시인 정호승이 “햇빛이 계속되면 사막이 되어버린다"고 비유했듯이 언제나 기쁜 일, 좋은 일만을 기대하고 살 수는 없다. 지금 행복하다면 앞으로 닥칠지 모를 불행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마음이 오로지 슬픔이나 노여움에 집중돼 있다면 균형을 잡을 필요는 있다. 의식적으로 기쁨과 즐거움에 집중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지금 사막과 같은 마음, 비바람과 눈보라가 치는 마음부터 긍정적으로 바꾸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이미 말했듯이 운동도 결과적으로 긍정적 사고로 이끄는 지름길 중 하나다. 신체가 편안하면 정신도 편안해진다. 그렇기에 더는 저녁 모임 등으로 자신을 소진하지 않고 퇴근하면 집으로 와 ‘저녁이 있는 삶’을 보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나의 우울증 치유기
1내가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다 50대 중반 퇴사 후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에 사로잡혀
2너무 마음이 아픈데도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다 우울하고 피곤하고 불면증에 끝없는 죄책감의 연속
3밤새 불면증과 싸우며 악전고투하다 자율신경계 조절이 안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맥박은 벌떡벌떡
4KBS-2TV '아침마당'에 출연하다 최악의 컨디션인데도 멀쩡하게 방송 진행. 주변에선 낌새 못채는 병
5한밤중에 공황발작 일어나다 100m 달리기 뛰듯 심장 터질 듯하며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
⑥ 정신과로 가라는 말이 내겐 청천벽력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 불면증, 좌절감이 우울증으로 발전
⑦ 의사는 내게 희망보다 절망을 주었다 심드렁한 표정에 사무적 말투. 불치병을 선고하는 듯한 태도에 낙담
⑧ 지리산 2km도 못 올라가고 포기하고 말았다 막걸리 먹고 오랜만에 죽었던 감각기관 살아나 취흥 느꼈으나…
⑨ 제멋대로 달리는 차, 중앙차선을 넘어 달리다 장기간 불면으로 판단능력을 잃고 희노애락이 사라지다
⑩ 고속도로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다 악령이나 마귀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 그러나 두 통의 전화가 나를 살리다
11비 오듯 땀 흘리며 심장은 빨리 뛰고 그러나 희망을 주는 의사를 만나 자신감을 얻다
12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본격 시작 몸과 마음, 정신을 조화시켜 스스로를 즐겁게 하다
13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다 한 달 만에 우울증 약을 반으로 줄였다
14친구 말 한마디에도 무너져 버리다 우울증 치유, 심리적 추락을 극복하라
1524시간 ‘긍정’ 관리체계 가동하다 좋은 글 외우고 ‘오늘 좋은 일’ 떠올리고...
16뇌는 생각하는 대로 작동한다 행복은 ‘긍정하기’ 훈련-습관을 통해 이뤄진다
173개월만에 병원 치료를 마치다 여럿이 어울려 싱그러운 햇볕 속에서 운동하고 떠들다보니…
18‘우울 사회’로 변해가는 이유 물질적 풍요를 이루자 심적 공허함이 찾아오다
19'하면 된다'가 주는 피로와 압박 내 자신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나요?
20자기 치유를 위한 첫걸음 우울증, 신앙과 글쓰기로 극복하다
21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다 불운 속에서도 관용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링컨
22큰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우울증 스토리 때로는 창작 에너지를, 때로는 죽음을 안겨주다
23환자 내면의 문제를 알고 치유하는 과정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며 아픔의 원인을 찾아라
24열심히 달려온 인생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다 외로움, 열등감, 불안감으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
25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할 시간 감정과 생각에 흔들리지 않고, 내 스스로 제어해야
26성공했으나 불행한 사람들 삶의 목표를 다시 잡으며 자신을 긍정하기
27내가 만들어 나가는 즐거운 일상 나이 60세, 100세 시대엔 남은 시간이 많다
28나는 나에게 즐거움을 허락할 의무가 있다 음악의 강력한 힘으로 감정 조절하기
29음악으로 행복한 삶 누리는 법 내게 맞는 ‘음악 식단’을 짜라
30화려한 외면 속 불행한 내면의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 켠 존재해온 '불안함'
31나의 불안과 대화 하기 신앙과 독서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32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맥아더 장군의 화 다루기 화를 가라앉히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33화가 곧 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지 말 것 '왜 나는 욱할 때 참지 못할까?'
34화 다루는 감정 관리법 “화는 보살핌을 바라며 우는 아기와 같습니다”
35인생의 가치를 찾아서 자기비하, 콤플렉스 벗어나야 우울증 극복
36'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숨기고 싶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다
37내가 행복해지는 방법 "자기 자신을 믿어라"
38힘든 마음에 도움이 된 신앙 나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39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 믿음 통해 마음이 편해지니 우울증도 극복
40내게 축복이 된 우울증 기쁨, 감사, 희망...행복한 변화가 찾아왔다

진행중인 시리즈 more

완결 시리즈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