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치유기

13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다

한 달 만에 우울증 약을 반으로 줄였다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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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좀 나은 것 같은데 약을 쉬어볼까?’

컨디션이 조금 나아지자 나는 다시 약을 줄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약 기운으로 버틴다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가 나와 같은 유혹에 빠진다. 그래서 의사의 신신당부도 무시하고 약을 반으로 줄여버렸다. 부작용은 하루 뒤에 바로 나타났다. 불면증이 다시 생겼다.

새벽부터 잠이 깼다. 새벽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이때부터 가(假)수면 상태로 침대에서 뒤척인다. 온통 식은땀에 이불과 속옷이 푹젖어 있다. 매우 불안했다. 새벽 5시가 돼서 억지로 일어났다. 몸이 개운치 않고 마음도 편치 않았다. 머리가 아팠다. 계속 손으로 머리를 두드렸다. 특히 정수리 옆이 몹시 아팠다.

하루 한 번, 운동할 여유를 찾아 걸어서 인근 고덕산으로 향했다. 해발 80여 미터의 낮은 산을 1시간 정도 걸었다. 요 며칠은 아침에 운동 후 샤워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게 풀렸는데 오늘은 몸이 더 찌뿌드드한 느낌이 들었다. 갑자기 정강이 부분에 쥐가 났다. 나는 서둘러 마사지하며 경련을 풀었다.

힘이 빠져서 소파에 누웠더니 마음이 불편해졌다. 막연한 불안, 두려움이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이 다시 벌떡거리는 것 같았다.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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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출근해서 종일 심신이 피로했다. 나는 점심 식사 이후 다시 의사가 처방한 용량대로 약을 먹었다. 오후에는 마침 특별한 일이 없었다. 나는 좀 쉬기 위해 인근 사우나에 갈까 생각하다가 과거 내가 무릎을 다쳐 다녔던 스포츠 클리닉이 생각났다. 병원에 가니 낯익은 스태프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의 무릎 관리를 맡았던 물리치료사 청년이 내 몸을 만져보고는 깜짝 놀란 듯 말했다.

“왜 이렇게 몸이 딱딱하게 굳어 있나요. 야, 이런…. 요즘 너무 육체적으로 과로한 일을 하시는 모양이죠? 이런 몸 상태가 계속되면 큰 병이 됩니다."

사실 육체적으로 과로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문제는 마음, 스트레스에 있었다. 울화병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그가 몸을 누를 때마다 아팠다. 정말 몸이 이곳저곳 쑤셨다. 스트레칭을 하는데 오른쪽 어깨관절에 통증이 느껴졌다. 물리치료사는 오십견 초기 같은데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권유했다.

 

마음에 탈이 나면 육체로 번지는 모양이었다. 온갖 증상이 나타났다. 그즈음에는 소변을 볼 때마다 시원하지도 않고 사타구니 근처가 아팠다. 손으로 누르면 저릿저릿 아팠다. 이왕 사무실을 나온 김에 남성 클리닉을 찾았다. 원장은 몇 가지 검사를 하더니 스트레스로 인해 전립선 부위가 압박을 받아 아픈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자동으로 항문 주위 근육을 마사지해주는 의자에 앉았다. 또 전자파를 투입해 근육 주변을 풀어주는 치료도 병행했다. 치료를 받고 나니 한결 시원했다.

나는 그때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과로할 일도 없었다. 매일 아침 운동을 하고 우울증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누적된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은 계속 내 육체를 공격하고 허물어뜨리려고 하고 있었다.

‘여기서 지면 안 된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자전거 타기와 등산의 놀라운 효과

매일 아침 1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처음 며칠은 페달 밟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곧 체력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물론 정상 체력을 회복하자면 아직 멀었다. 그러나 약간 힘들 정도로 운동 강도를 높였더니 더 좋았다. 

운동에 집중할 때 머리는 쉴 수 있었고, 운동하고 나서 생기는 나른한 피곤함은 민감한 신경을 안정시켜주었다. 게다가 기분이 좋아지고 식욕이 생겼다. 

주말에는 인근 고덕산으로 가 2~3시간 정도 등반했다. 낮은 산이지만 산책로가 많았기에, 중간중간 쉬면서 체조를 하거나 팔굽혀펴기, 복근 운동 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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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생활은 뜻밖에도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적응해나갔다. 내가 말을 적게 하는 모습은 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모습으로 비쳤다. 그것이 직원들에게는 자신들을 존중하는 태도로 받아들여진 듯했다. 진정제 기운으로 다소 몽롱한 상태이던 나의 모습이 그들에게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처럼 편하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사실 평소 나는 견해를 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솔직한 성격인데 지금은 정반대의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마음의 근력까지 키워주는 ‘운동’의 힘

무엇보다 가장 큰 효과를 낸 것은 운동이었다. 운동이 우울증은 물론 건강과 노화 방지에 좋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운동을 하게 되면 여러 긍정적 현상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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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우울증으로 축 처져 있던 인체 기능이 활성화된다. 

심폐기능, 혈액순환, 근육운동 등 신체의 모든 생리적 기능이 정상화되며 적절히 자극, 사용됨으로써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뤄진다.

 

둘째, 신체가 강건해진다.

운동을 하면 심장과 혈관, 각종 장기와 뼈가 튼튼해진다. 더불어 근력이 강화돼 체력과 에너지 효율이 올라가고 피곤이 덜 느껴진다.


셋째, 면역 기능이 향상된다.

면역 체계가 활성화되면서 각종 병에 대한 방어력이 강화된다. 특히 백혈구의 일종이며 일명 ‘암을 죽이는 특공대’로 불리는 NK세포(Natural Killer Cell, 자연살해세포)는 유산소운동을 통해 활성화된다. 반대로 운동을 하지 않으면 90퍼센트의 NK세포는 놀고 지낸다. 우울증에 걸리면 면역력도 급격히 약화한다.


넷째, 우울증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행복감이 증진된다.

운동은 긴장한 심신을 안정시키고, 기분을 유쾌하게 하며, 자신감을 회복시켜준다. ‘행복 호르몬’으로 불리는 엔도르핀과 세로토닌이 뇌에서 분비되기 때문이다. 엔도르핀은 행복감을 가져다주고 고통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주로 우리가 조깅 등 활발한 운동을 할 때 분비된다. 세로토닌은 우울증 환자에게 특히 필요하며, 주로 산책, 체조 등 가벼운 운동이나 명상 시 배출된다.

우울증이 심해지면 집 밖으로 나가기를 싫어하게 되며, 집 안에서도 움직이지 않고 누워만 있게 된다. 이럴 경우 건강은 더욱 악화된다. 운동 부족으로 인한 신체 기능 감퇴, 식욕과 의욕 감소, 영양 상태 및 면역 기능 저하 등 질병 및 우울증 유발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사막 같았던 마음에 단비가 내리다

치료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난 뒤 나는 원장의 처방에 따라 진정제를 끊었고 수면제는 반으로 줄였다. 거의 매일 아침 자전거를 탔다. 자전거를 탄 지 두어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자전거를 한강 변에 세워놓고 산책을 했다.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며, 며칠 새 부쩍 키가 자라 우거진 강변 갈대숲을 혼자 걷고 있었다. 갑자기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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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gentle is the rain~"으로 시작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팝송 중 하나인 ‘A Lover’s Concerto’였다. 원래 1960년대 노래지만 우리에게는 1990년대 영화 ‘접속’으로 유명해졌는데 그 노래가 떠오른 것이다.

아! 얼마 만에 이런 기쁜 마음이 드는 건가. 마음이 ‘울컥’했다. 이 또한 얼마 만인가. 

바뀐 공간과 운동의 힘은 위대했다. 지친 삶의 때와 상처, 너덜너덜해진 마음의 폐허를 뚫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어린 시절 골동품과 같았던 기쁨과 감성의 정서가 새싹처럼 돋아나다니….

만약 내가 얼마 전처럼 비참한 마음속에 그냥 집에서 널브러져 누워 있었다면 이렇게 느낄 수 있었겠는가. 그런데 매일 아침 한강 변으로 나와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다 보니 이렇게 마음의 정서가 바뀌는 것이었다. 선택은 한 발짝 차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의사들은 정신 질환의 경우 치유의 첫 단계는 ‘치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치료가 진행돼 회복이 진행될 때는 환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의사들이 많다. 

행복한 마음 상태를 만드는 최종적인 힘은 환자의 의지에서 나오지 약물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나의 우울증 치유기
1내가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다 50대 중반 퇴사 후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에 사로잡혀
2너무 마음이 아픈데도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다 우울하고 피곤하고 불면증에 끝없는 죄책감의 연속
3밤새 불면증과 싸우며 악전고투하다 자율신경계 조절이 안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맥박은 벌떡벌떡
4KBS-2TV '아침마당'에 출연하다 최악의 컨디션인데도 멀쩡하게 방송 진행. 주변에선 낌새 못채는 병
5한밤중에 공황발작 일어나다 100m 달리기 뛰듯 심장 터질 듯하며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
⑥ 정신과로 가라는 말이 내겐 청천벽력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 불면증, 좌절감이 우울증으로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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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고속도로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다 악령이나 마귀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 그러나 두 통의 전화가 나를 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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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본격 시작 몸과 마음, 정신을 조화시켜 스스로를 즐겁게 하다
13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다 한 달 만에 우울증 약을 반으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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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뇌는 생각하는 대로 작동한다 행복은 ‘긍정하기’ 훈련-습관을 통해 이뤄진다
173개월만에 병원 치료를 마치다 여럿이 어울려 싱그러운 햇볕 속에서 운동하고 떠들다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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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하면 된다'가 주는 피로와 압박 내 자신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나요?
20자기 치유를 위한 첫걸음 우울증, 신앙과 글쓰기로 극복하다
21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다 불운 속에서도 관용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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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환자 내면의 문제를 알고 치유하는 과정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며 아픔의 원인을 찾아라
24열심히 달려온 인생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다 외로움, 열등감, 불안감으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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