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우울증 치유기

12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본격 시작

몸과 마음, 정신을 조화시켜 스스로를 즐겁게 하다

함영준  |  편집 하용희 기자  2019-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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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맞은 ‘좋은 아침’

‘지난 몇 개월간 내게 일어난 일을 가지고 글을 쓴다면 참 파란만장하겠다. 요즘 난 너무 나 자신에게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늘 마음이 복잡하다. 아프다. 불안하다. 사람들 보기가 두렵다. 이렇게 사는 게 최선일까? 불안, 초조, 죄책감, 우울증, 불면증, 격심한 심장박동, 공황발작 등 참으로 여러 가지를 겪었다.  이 모든 것을 이겨야 한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 늘 좋은 생각만 하자. 곧 달라질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글로 쓰겠다.’

애써 자신을 격려하며 집으로 돌아와 약을 먹고 잠자리에 일찍 들었다. 이튿날 일어났을 때 기분이 상쾌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맞는 ‘좋은 아침’이었다. 수면제와 항우울제(세로토닌) 덕분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내가 화학작용으로 살아가는 듯한 이상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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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오전 약을 들었다. 진정제가 들어간 탓인지 정신이 다소 몽롱해졌다. 180mmHg까지 치솟던 혈압이 120mmHg로, 분 당 100회까지 올라가던 맥박 수가 60회 정도로 떨어져 정상 수치를 보였다. 비교적 편안하게 낮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야 여전히 우울했지만 심각한 불안감이나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이제 내일이면 회사에 출근한다. 나는 회사 업무를 이해하기 위해 회사 관련 책자와 인터넷 웹사이트 속 내용을 숙지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머릿속이 워낙 산만해서 이해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또 암기력이 현저히 떨어져 회사 조직과 간부 이름을 외기도 쉽지 않았다. 두뇌 기능이 정상의 3분의 1 이하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저녁 때가 되니 다시 걱정거리가 생겼다. 내일 첫 출근 날인데 혹시 사원들이 출근 저지를 한다면? 애써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녁 약을 먹었다. 약 기운의 위력은 컸다. 의지를 갖고 통제하려고 해도 되지 않던 불안감이 가라앉으며 이틀째 숙면에 빠져들었다.


어떻게 하면 나를 즐겁게 할 수 있을까?

드디어 첫 출근 날이다. 아침 7시 정각, 회사 운전기사가 내 아파트 주차장에 와 대기하고 있었다. 그가 모는 승용차를 타고 일찍 출근했다. 오전 7시 반. 회사 로비는 조용했다.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큼직한 집무실은 창 너머 남산과 시청 앞 광장이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마음이 놓였다.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차분하게 지낼 수 있게 됐다.

오전에 임원들과 상견례를 하고 전체 직원들이 강당에 모인 가운데 치러진 취임식도 순조롭게 끝났다. 몇몇 간부는 평소 내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나는 새로 이사 온 이웃처럼 조심스럽게 행동했다. 우울증은 겉으로 봐선 잘 모른다. 평상인과 다름없어 보일 수도 있다. 이렇게 첫날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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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내 업무 처리 속도는 매우 느렸다. 서류 한 장을 보는데도 10분이 걸렸다. 집중이 되지 않았고,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회의 때 발언은 거의 삼갔다. 회사 분위기나 업무도 익숙지 않을뿐더러 두뇌 회전이 엉망이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서 세로토닌의 효과도 줄어들었다. 잠은 그럭저럭 잤지만 아침은 지옥과 같다. 눈을 뜨는 순간, 오늘도 끔찍한 하루를 보내야 한다는 의식으로 시작한다. 자살률이 특히 아침에 높은 것도 이런 관계가 있을 것이다.

이미 얘기했다시피 우울증 치료의 첫 단계 조치는 약물 요법다. 아무리 신체가 건강한 운동선수라도 몸살이나 질병에 걸려 꼼짝할 수 없게 되면 약을 통해 체력을 회복하듯, 정신적으로 허약해진 사람도 마찬가지다. 의사의 처방에 따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자칫 시기를 놓치면 회복이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약물에만 치료를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마음의 병은 역시 마음으로도 치료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당사자의 자세가 중요하다. 환자 스스로 병을 이겨내겠다는 의지 말이다.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나를 편하게 할까.


건강한 신체, 강한 정신, 밝은 마음을 위해

인간은 신체와 정신과 마음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정신은 사고 활동으로, 마음은 정서 활동으로 구분했다.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로 조화를 이뤄야 행복한 삶이다. 건강한 신체에서 건강한 두뇌 활동이 이뤄지며 이것이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운동으로 심신에 활력을 주고,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정신력을 강화하고, 명상으로 마음을 쉬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회사 일과를 중심으로 인지행동치료 훈련 지침을 만들었다.

.아침 : 신체 활력 → 산책과 운동
.점심 : 정신 강화 → 긍정적 사고
.저녁 : 마음 휴식 → 단전호흡과 명상


아침 5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기 

이제 우울증과 본격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나는 알람 시각을 아침 4시 50분으로 맞춰놓았다. 자명종이 울리면 무조건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일어나기가 정말 싫었다. 아침이 심리적으로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다. 비몽사몽 속에 헬멧을 쓰고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내가 살던 강동구 암사동에서 출발해 강변 자전거 도로를 타고 건설 중인 암사대교 현장을 지나 하남시 쪽으로 내달렸다. 처음에는 정말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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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때는 신록이 무르익는 계절인 5월.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다 보니 잔뜩 가라앉은 마음이 서서히 올라오며 경직된 몸도 풀리기 시작했다. 숨이 헉헉 걸리는 ‘깔딱 고개’로 오르기 시작하자 몸이 달아오르면서 땀이 솟았다. 체력 저하로 도저히 자전거를 타고 끝까지 올라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중턱에서 내려 자전거를 끌고 간신히 정상으로 올라갔다.

초여름 한강 변은 신선했다. 수변 공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수풀 갈대밭을 걸었다. 아침 햇살에 싱그러운 바람, 이름 모를 꽃들과 수풀, 탁 트인 강변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씩 환해지기 시작했다. 더구나 땀이 날 정도로 페달을 밟지 않았던가. 가쁜 숨이 잦아지면서 서서히 힘이 솟았다. 약 1시간 후 ‘상쾌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와 샤워하고 오전 7시 정각에 집을 나섰다.


출근해서는 최대한 긍정적 사고와 행동하기 

출근해서부터는 최대한 긍정적 사고와 태도로 살기 시작했다. 의심과 미움, 분노 등 부정적 감정이 들면 의식적으로 쫓아내거나 잊어버리려고 애썼다. 흥분하거나 우울해지지 않고 평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행동 역시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려고 했다. 말은 되도록 적게 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려고 애썼다. 태도는 겸손함을 유지하고 말이다. 마음이 초조해질 때는 느긋하려고 최대한 애썼다. 회의가 있으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저녁 일찍 들어와 휴식으로 에너지를 축적하기

의사가 내게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라’고 권함에 따라 나는 ‘운동’과 ‘긍정적 사고방식’의 실천에 이어 세 번째로 ‘저녁이 있는 삶’을 택했다. 과거에는 술이나 야근으로 이어지는 ‘저녁이 실종된 삶’을 살았다. 그러다 보니 늘 심신이 지쳤고 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휴식과 여가로 에너지가 축적되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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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았다. 6시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와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오후 7시가 조금 넘는 시각. 이전 같으면 바깥에서 손님들과 막 저녁을 들 때였는데…. 시간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자연히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소화도 시킬 겸 동네 한적한 길을 산책했다. 아내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면서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다 보면 복잡한 정신이 정리되며 기분이 즐거워진다. 찌뿌듯한 몸도 가벼워지며 신체적 만족감이 찾아온다. 

텔레비전 뉴스는 되도록 보지 않았다. 기자 출신이라 평생 뉴스가 관심사였지만 근래에는 뉴스를 보고 나면 마음이 더 우울해지고 생각이 더 복잡해지곤 했다.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더라도 세상은 돌아간다는 마음으로 뉴스에서 눈길을 거두었다. 그 대신 ‘개그 콘서트’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예능, 자연 다큐멘터리를 봤다. 의식이 집중되며 이런저런 잡념도 없어지고 마음도 즐거워졌다. 새 직장에 출근한 이후 일주일을 그렇게 보냈다. <계속>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나의 우울증 치유기
1내가 나를 신랄하게 공격하다 50대 중반 퇴사 후 패배감, 후회, 자책, 허탈감에 사로잡혀
2너무 마음이 아픈데도 정신은 말똥말똥해지다 우울하고 피곤하고 불면증에 끝없는 죄책감의 연속
3밤새 불면증과 싸우며 악전고투하다 자율신경계 조절이 안되면서 땀 뻘뻘 흘리고 맥박은 벌떡벌떡
4KBS-2TV '아침마당'에 출연하다 최악의 컨디션인데도 멀쩡하게 방송 진행. 주변에선 낌새 못채는 병
5한밤중에 공황발작 일어나다 100m 달리기 뛰듯 심장 터질 듯하며 금방 죽을 것 같은 기분
⑥ 정신과로 가라는 말이 내겐 청천벽력이었다 과도한 스트레스, 불면증, 좌절감이 우울증으로 발전
⑦ 의사는 내게 희망보다 절망을 주었다 심드렁한 표정에 사무적 말투. 불치병을 선고하는 듯한 태도에 낙담
⑧ 지리산 2km도 못 올라가고 포기하고 말았다 막걸리 먹고 오랜만에 죽었던 감각기관 살아나 취흥 느꼈으나…
⑨ 제멋대로 달리는 차, 중앙차선을 넘어 달리다 장기간 불면으로 판단능력을 잃고 희노애락이 사라지다
⑩ 고속도로에서 자살 충동을 느끼다 악령이나 마귀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 그러나 두 통의 전화가 나를 살리다
11비 오듯 땀 흘리며 심장은 빨리 뛰고 그러나 희망을 주는 의사를 만나 자신감을 얻다
12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본격 시작 몸과 마음, 정신을 조화시켜 스스로를 즐겁게 하다
13새벽 5시에 일어나 자전거 타다 한 달 만에 우울증 약을 반으로 줄였다
14친구 말 한마디에도 무너져 버리다 우울증 치유, 심리적 추락을 극복하라
1524시간 ‘긍정’ 관리체계 가동하다 좋은 글 외우고 ‘오늘 좋은 일’ 떠올리고...
16뇌는 생각하는 대로 작동한다 행복은 ‘긍정하기’ 훈련-습관을 통해 이뤄진다
173개월만에 병원 치료를 마치다 여럿이 어울려 싱그러운 햇볕 속에서 운동하고 떠들다보니…
18‘우울 사회’로 변해가는 이유 물질적 풍요를 이루자 심적 공허함이 찾아오다
19'하면 된다'가 주는 피로와 압박 내 자신을 착취하고 있지는 않나요?
20자기 치유를 위한 첫걸음 우울증, 신앙과 글쓰기로 극복하다
21나만 이렇게 힘든 건 아니다 불운 속에서도 관용으로 우울증을 이겨낸 링컨
22큰 업적을 남긴 위인들의 우울증 스토리 때로는 창작 에너지를, 때로는 죽음을 안겨주다
23환자 내면의 문제를 알고 치유하는 과정 스스로 과거를 돌아보며 아픔의 원인을 찾아라
24열심히 달려온 인생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다 외로움, 열등감, 불안감으로 가득찼던 어린 시절
25상처를 딛고 일어서야 할 시간 감정과 생각에 흔들리지 않고, 내 스스로 제어해야
26성공했으나 불행한 사람들 삶의 목표를 다시 잡으며 자신을 긍정하기
27내가 만들어 나가는 즐거운 일상 나이 60세, 100세 시대엔 남은 시간이 많다
28나는 나에게 즐거움을 허락할 의무가 있다 음악의 강력한 힘으로 감정 조절하기
29음악으로 행복한 삶 누리는 법 내게 맞는 ‘음악 식단’을 짜라
30화려한 외면 속 불행한 내면의 사람들 어린 시절부터 마음 한 켠 존재해온 '불안함'
31나의 불안과 대화 하기 신앙과 독서로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32아이젠하워 미 대통령, 맥아더 장군의 화 다루기 화를 가라앉히는 데도 기술이 필요하다
33화가 곧 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지 말 것 '왜 나는 욱할 때 참지 못할까?'
34화 다루는 감정 관리법 “화는 보살핌을 바라며 우는 아기와 같습니다”
35인생의 가치를 찾아서 자기비하, 콤플렉스 벗어나야 우울증 극복
36'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숨기고 싶은 열등감에서 벗어나다
37내가 행복해지는 방법 "자기 자신을 믿어라"
38힘든 마음에 도움이 된 신앙 나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39내가 종교를 갖게 된 이유 믿음 통해 마음이 편해지니 우울증도 극복
40내게 축복이 된 우울증 기쁨, 감사, 희망...행복한 변화가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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