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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히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장소

한국의 사형집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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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이 집행되던 시절인 1991년 사형장을 직접 가본 경험이 있다. 첫 번째는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가 있던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내 사형장이다. 지금은 서대문독립공원내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으로 불린다.

지금은 깨끗하게 박물관처럼 재단장돼 전시돼 있지만 당시는 쇠락한 일본식 목조건물. 높이 3m, 폭 7m, 길이 20m 의 흰색 담 안에 있었고 그 옆에 심겨진 미루나무는 꺼멓게 죽어가고 있었다. 

당시 서울시는 담과 연해 있는 정문을 헐고 유리문을 달아 밖에 있는 일반인이 안의 사형장 건물을 볼 수 있게 했다. 열려진 사형장 입구는 마치 큰 괴물의 아가리 같았다. 그곳을 통해 시커먼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사형대와 그 밑에 뻥뚫린 죽음의 공간, 올가미를 지탱하는 도르래 등 부대 살인(殺人)장치, 주검의 모습을 가려주는 때묻은 흰색 커튼들이 짙은 갈색으로 변색된 목조 바닥과 어우러져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순간 오싹한 느낌이 등을 스쳤다. 서울 한복판 화사한 대낮인데도…. 

인간이 같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장소, 공공연히 인간의 생명을 박탈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소는 이 지구상에서 전쟁터와 사형장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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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부터 지금의 의왕 서울구치소로 이전되기 전까지 이곳에서 줄잡아 1천여명의 생명이 죽어갔다. 그 사람 중엔 애국 지사도 있었고, 극악무도한 살인자들도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억울하다"고 무죄를 주장한 이도 있었고, 눈동자가 하얗게 뒤집어진 채 “억지 누명을 쓰게 한 판-검사들을 죽어서도 복수하겠다"고 저주를 퍼붓고 간 이도 있었다. “나의 소원은 조국통일"이라고 외친 좌익수, 양심수도 있었고 정말 억울하게 용공간첩으로 몰려 사라진 사람, 정치적 패배로 죽음을 당해야 했던 정객, 실패한 모반자-반역자도 있었다.

회개한 사형수, 처연한 사형집행현장을 접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형폐지론자가 된다. 아무리 죄가 크더라도 과연 인간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는가라는 죄와 벌, 그리고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이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반면 끔찍한 살인의 현장이나 울부짖는 피해자 가족들을 목격한 이들은 사형존치론자가 된다. 한국인들은 사형존치론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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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가본 사형장은 지금의 서울구치소 사형장. 당시만 해도 청사 이전 후 4년동안 총 14명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었다.  1989년 8월 5명, 1990년 4월 7명, 12월 2명이다. 

사형장 출입할 때는 극도의 보안이 필요하다. 통상 사형장은 집행 때 외는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 몇 년이고 사람의 발길이 안닿는 적도 있었다. 때문에 사형장 주변에 얼씬거리는 사실이 알려지면 당장 교도소 전체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곧 사형집행이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남상철 서울구치소장은 “기자가 이곳 사형장을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구치소측은 보안을 위해 미결수들이 저녁을 먹고 일찍 입실케 하고 폐방을 완료했다. 당시 11월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 6시. 이미 주위는 컴컴해졌다. 나는 모자에 교도관 점퍼를 입고 구치소 왼쪽 편에서 북쪽 맨 끝에 있는 사형장으로 향했다. 왼편에는 의무실. 그러니까 사형장과 마주하고 있었다. 

오른편 철문을 여니 다시 바깥으로 나오는 구조였고 바로 앞에 흰색 건물이 보였다. 사형집행장이었다. 그 건물 안에 들어오니 첫 눈에 사형대가 바닥이 꺼진 채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위에 교수용 밧줄이 축 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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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큰 손 엄지손가락 정도 굵기의 밧줄로 모두 3차례 14명이 처형됐다. 그래서 사형수의 목에 거는 올가미 쪽은 보다 누렇게 변색됐으며 검붉은 핏자국도 있었다. 

현저동 구 사형집행장에서 쓰이던 밧줄은 일제때부터 쓰였다고 할 정도로 오래된 것이었다. 40여년 넘게 숱한 생명을 앗아간 그 밧줄은 수많은 목에서 나온 지방 성분의 분비물과 피가 묻어 새카맣고 반들반들했다고 한다. 사형장의 기구를 교체하면 구치소장에게 재앙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그 밧줄은 서울 구치소가 이전된 후에야 그 끔찍한 임무에서 벗어났다. 

흉가 같은 구(舊) 사형장과 달리 이곳은 밝은 형광동 불빛에 실내 전체가 흰색으로 칠해져 사형대만 없으면 일견 깨끗한 느낌을 갖게 할 모습이었다. 

가로 7m 세로 12m의 실내는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었다. 그림에서 보듯 아래 편에는 집행관측인 구치소장, 검사와 참관인 등이 위치한다. 자료를 놓기 위한 인조대리석 강단이 있다. 

집행장 가운데 가로-세로 70cm 마루판이 사형수가 집행절차를 밟기 위해 앉는 곳이다. 사형수는 두 계단쯤 아래 높이에서 집행관측을 올려다 보는 식이며, 양측 사이에는 높이 60cm 정도의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사형집행 장면을 가리는 커튼도 곁에 있었다. 

사형대는 그림 위쪽 ㄷ자형의 칸막이 벽 안쪽에 깔린 가로 1.4m 세로 1.2m의 짙은 갈색 마룻바닥이다. 그 바닥 상공에는 교수형 밧줄이 도르래에 의해 직각으로 달려 있고 밧줄 끝은 칸막이 뒤로 넘어간다. 

특이한 것은 바닥 한 가운데 전차길 같은 레일이 깔려 있다는 점이었다. 이것은 사형수가 처음에 가운데 마루판에 앉아 있다가 모든 의식이 끝난 후 그대로 앉은 채로 사형대까지 미끄러지듯 옮기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 집행장의 겨우 의자에서 일으켜 뒤로 끌고 갔는데 사형수가 반항할 경우 교도관들이 애를 많이 먹었다. 보다 수월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 것이었다. 

사형대는 마치 방금 집행이 끝난 듯 바닥이 지하실로 푹 꺼져 있었다. 영원한 암흑세계의 입구 같은 그 검은 공간을 다가가 내려다보는 순간 여기서 죽어나간 사형수들의 외마디가 멀리서 희미한 소리로 길게 여운져 들리는 듯 했다. 

사형절차는 이렇다. 사형수가 집행장에 들어와 중앙 정사각형 마루판에 앉혀진다. 그 앞에 구치소장, 검사, 성직자, 교도소 직원 등 집행 관계자가 앉는다. 구치소장의 인정신문, 집행관의 소송과정에 대한 확인절차, 사형수의 최후진술, 종교의식으로 이어진다.

마침내 종교의식 말미가 되면 구치소장이 대개 눈짓으로 집행준비 사인을 내린다. 과거 집행 절차 대부분은 말을 하지 않고 서로 암묵적으로 눈짓 하나로 진행되었다. 새로 신축된 사형장에는 이런 불편을 시정하기 위해 모두 전기신호처리 시스템으로 바꿨다. 집행관석에 빨간 불이 들어와 대기, 준비, 진행, 완료 상황을 단계적으로 볼 수 있는 계기판이 있으며 직접 단계별로 집행명령을 내리는 버튼이 5개 있다. 그 오른 쪽에는 ‘정지 확인’, ‘복귀’, ‘비상정지’라고 쓰여진 3개의 버튼이 종렬로 있다. 

종교의식이 끝날 무렵 구치소장이 ‘준비’ 버튼을 누르면 사형대 위에 설치된 빨간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집행자의 대장격인 교도관이 사형수 옆쪽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교도관 두명이 양쪽에서 사형수 머리에 흰두건을 씌우고 포승으로 몸을 묶고, 레일을 통해 마루판을 끌어 사형대로 옮긴 뒤 허공에 설치된 도르래릍 통해 내려온 밧줄을 목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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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5명의 교도관이 사형대 뒤 칸막이 벽 뒤에 위치를 완료하고, 집행버튼 누를 준비를 한다. 사형수 앞에는 흰 커튼이 쳐지며 집행광경을 차단한다. ‘집행’이라고 써진 빨간 불이 들어오면 5명의 교도관은 일제히 버튼을 누른다. 이중 실제 작동되는 버튼은 하나며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순간 철거덕 소리가 나여 사형대 직사각형 마루판이 아래로 꺼지는 동시에 사형수 몸은 지하로 떨어지면서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올가미가 목을 콱 조임에 따라 ‘윽’하는 외마디 소리가 난다. 

이 순간을 처음 목격하는 이는 충격과 공포로 이빨이 딱딱 부딪칠 정도로 덜덜 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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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간 서울구치소 교무계에 근무하면서 사형수 교화에 힘썼던 관계자는 항상 뻥뚫린 곳 앞까지 가 큰 목소리로 임종경을 불러주는 바람에 운명 순간을 언제나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운명 직전에는 반드시 발 끝이 파르르 떨리고 이윽고 긴장상태에 몸 속에서 무엇이 빠져나가는 듯 몸뚱이가 축 아래로 처져 버리더군요."

교수형이 집행되면 안에 있던 사람들은 우르르 밖으로 나와 긴장과 충격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한다. 구 서울구치소 사형장 바로 앞에는 높이 10m 미루나무가 서 있었는데 그 밑에서 집행인 입회인들이 모여 담배를 피웠다고 한다. 당시 나도 그 미루나무를 보았는데 인근 다른 나무들은 잘 자라고 있는데 반해 그 나무만 꺼멓게 말라가고 있었다. 

 

<유튜브 영상>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평소 인간의 본성, 마음, 심리학, 뇌과학, 명상 등에 관심이 많았으며 2018년부터 국내 저명한 심리학자들을 초빙, ‘8주 마음챙김 명상’ 강좌를 조선일보에 개설했다.

마음건강 종합 온라인매체인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2019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는 우울증 치유기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40대 중년 위기를 다룬 <마흔이 내게 준 선물>, 한국 걸출한 인물들의 인생기 <내려올 때 보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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