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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을 경험해야 진짜 최고가 되죠”

3류 극장서 세계 최고 지휘자가 탄생한 비결

이규연 기자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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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독일의 울름이라는 소도시의 시립극장에서 신입 지휘자를 모집했다. 그러나 극장 예산이 거의 없었으므로 저렴한 연봉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고 공지했다. 한 젊은이가 지원했다. 

“새 작품을 지휘할 기회를 주신다면 기꺼이 가겠습니다. 대신 제가 지휘할 작품은 직접 리허설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갓 학교를 졸업한 이 청년은 제대로 된 오페라 지휘 경험은 없지만, 자신의 열정만은 주목해도 좋다고 호소했다. 그렇게 독일 작은 도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울름 시립극단 지휘자 생활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형편없었고, 합창단들은 악보도 볼 줄 모르는 무료 봉사자 수준이었다. 월급 역시 80마르크(약 20달러)로 처참한 수준이었는데, 그 돈으로 방세와 식비, 오토바이 연료비까지 해결해야 했다. 풋내기 지휘자는 같은 옷을 며칠씩 입고, 치약·비누 등 생필품을 가족으로부터 지원받아야 했다.

그렇게 울름 시립극단에서 20대 전반을 보내고 나와 다른 극단을 찾아 나섰지만, 음악계에선 형편없는 소도시 극단에서 지휘자로 일한 그의 경력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대학 전공은 음악과 관련 없는 기계공학이었다. 그는 클래식 지휘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 아헨 시립극장 임시 수습 악장을 맞게 되는데, 이 역할을 무난히 소화해내면서 스물일곱 나이에 독일 최연소 음악총감독이 된다. 이후 줄곧 지휘자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다가 마침내 그는 1955년 세계 최고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자리에 만장일치로 선택된다. 전설적인 클래식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1989)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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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게티이미지코리아

 

베를린 필하모닉 지휘자가 된 카라얀에게 한 기자가 물었다.

“울름에서 형편없는 악단을 지휘한 것이 오히려 음악성에 악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는지요?"

카라얀은 답했다.

“눈앞의 형편없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동안 머리로는 이상적인 음을 듣고, 다른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기 때문에 상관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악보도 볼 줄 모르는 합창단을 지휘하고, 리허설장까지 직접 수레로 악기들을 운반하기까지 해야 했던 당시의 경험이 훗날 큰 자산이 되었다고 말했다. 

“밑을 경험하지 못한 지휘자들은 가장 근본적인 부족함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 지휘자는 그럭저럭 괜찮은 음악밖에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진정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밑바닥도 알아야 합니다.

한편, 동시대에 카라얀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삶을 산 지휘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크라우스, 1893년 오스트리아 빈의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나 8살 때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빈 소년합창단에 입단하는 등 지휘자가 되기까지 엘리트 코스만을 밟았다. 

하지만 크라우스는 최고의 지휘자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카라얀의 말대로 그는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하지 못했고, 무엇이 부족한지 몰랐다. 최고의 환경이 계속 이어지면서 역설적으로 그 환경이 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그는 결국 ‘그럭저럭 괜찮은 지휘자’라는 평판만을 남긴 채 커리어를 마쳤다.

금수저가 아니라서,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해서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카라얀의 메시지를 잊지 말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훗날 카라얀처럼 힘든 날의 경험이 훌륭한 자산이라고 평할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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