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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거대 ○○ 공화국”

김정일 침실 보고난 이후 소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나라는 엄청난 거짓말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국가의 정책으로 삼아 국가를 세우고 그것을 수행하고 있는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이 점차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일본 좌파 ‘아카하타(赤旗)지’의 평양 특파원, 하기와라 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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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 김대중-김정일 회담 이후 북한도 은둔 상태에서 벗어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래서 2001년 1월 김정일은 100여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십수년만에 중국을 방문했다. 이때 중국은 한창 개혁개방 정책으로 바쁜 때였다.
당시 홍콩특파원으로 상하이에 출장 와 김정일 일행이 중국 당국의 융숭한 대접 속에 ‘공짜 여행’을 즐기는 현장을 목격한 나는 김정일이 자고 간 방에 나둥그러진 술병 등을 보고 입맛이 매우 썼다.
북한은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는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자신들은 술파티에 취해 있었다. 중국측으로선 적은 투자로 최소한 김정일 일행에게 ‘마음의 빚’을 남겨준 셈이 됐다. 이것이 ‘주체(主體)의 나라’ 북한의 21세기 모습이다.
한바탕 쇼를 본 느낌이다. 과연 김정일 일행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상하이가 천지개벽됐다"고 말했다는데 김정일도 과연 북한을 그렇게 변화시킬 것인가.
 
외견상 그들의 행동은 일사분란 했고 절도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실상은 김정일의 정돈되지 않은 침실 풍경처럼 혼돈(mess)과 애매모호함 그 자체로 느껴졌다. 왜 왔는지, 무엇을 했는지가 다 불분명했다. 그들이 진정 북한 인민을 구제하기 위해 중국식 개혁·개방을 배우러 왔다면 그렇게 새벽까지 호텔 안에서 공짜 술과 음식에 취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들은 김정일이란 주연 배우 한 사람만 존재하고 나머지는 모두 엑스트라로 이뤄진 악극단처럼 느껴졌다. 황장엽은 1997년 2월 한국에 귀순하면서 자필로 “노동자·농민이 굶주리고 있는데 노동자·농민을 위한 이상사회를 건설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을 어떻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마음 한 구석에선 착잡함과 안타까움 그리고 분노가 교차되고 있었다.  모든 게 사기다.
이로부터 1년8개월 뒤인 2002년 9월 김정일은 신의주를 개방, 홍콩과 같은 ‘북한판’ 특별행정구를 만들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러나 첫 삽도 뜨기 전에 특구 책임자로 선정된 화교  사업가는 비리로 중국 정부에 구속되고 계획은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북한은 변화되지 않았다. 도리어 핵폭탄을 빌미로 동족인 우리를 협박하고 전세계를 상대로 부랑아 짓을 하고 있다. 이것이 북한의 실상이다. 그러나 우리 내부는 지금 분열되어 있다.
내가 만나 본 북한인들
나는 북한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과도한 적대감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집안 뿌리도 이북이다. 월남민이다. 있는 그대로 그들을 본다. 내가 살아오면서 북한인들과 조우한 적은 여러 번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우는 뉴욕 UN본부에서였다. 내가 뉴욕에 근무하던 1988년 2월, UN 안보리에서다. 이른바 김현희의 KAL기 폭파테러 사건을 놓고 남북이 공방전을 벌일 때다. 북한측의 당시 주장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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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 군부파쇼집단은 작년 서울대생 박종철군을 물고문으로 살해하는 등 수많은 민주인사·학생들을 고문·투옥하거나 간첩으로 조작해왔다. 얼마 전 중앙정보부 전 두목 이후락은 월간조선 조갑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73년 박정희의 지시로 야당 지도자 김대중을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쳤다고 실토했다. 그 괴수 박정희는 부인을 같은 조선인 손에 잃었을 뿐아니라 정작 자신은 자기 오른 팔이자 중앙정보부 두목인 김재규에 의해 암살되었다.… 이렇듯 자기들끼리 모든 잘못을 저질러 놓고 이를 우리에게 뒤집어 씌우는 작태들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으며…"
하도 한국 쪽의 약점만 골라 절묘하게 엮어 얘기하는 통에, 듣는 나도 민망할 정도였다. 중간 휴식 시간에 복도에서 박길연 주UN 북한대사를 보고 몇 마디 질문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던 자그마한 키에 올백 머리의 정치담당 참사관이 “남반부 놈들은 다 쓸어버려야 해"라며 표독스럽게 맞서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동족을 상대로 대규모 살상을 벌이고도 이 책임을 우리에게 떠돌리고, 그것도 모자라 야수같은 적의를 드러내는 인간들이었다.       .
북한,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북한을 두고 하는 얘기다. 한국 전문가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는 김일성이 1930년대 중반 항일운동의 중요한 유격대 지도자라고 했다. 김일성은 만주의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한국전쟁에도 참전했고 워싱턴포스트지 기자였던 돈 오버도퍼(Don Oberdorfer)도 김일성의 항일투쟁이 훗날 북한의 선동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백전백승의 눈부신 위업은 아니었지만 일본군이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만큼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기술했다. 그는 그러나 김일성은 소련군 훈련소에서 4년간 지냈고 스탈린에 의해 북한 지도자로 선택됐다는 설이 있다고 밝혔다. 
어쨌든 건국 초기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의 지도부는 항일운동가들이 주축이 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항일운동가·해외파·국내파·친일파·협조파 등이 뒤섞여 있었다. 명분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북한이 한국보다 우월한 입장에 있었음은 사실이다. 
건국 초기, 한국이 좌파다 우파다 하며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북한은 공산 독재 국가 특유의 결속력으로 국력을 결집하고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했다. 일본에 의해 건설된 북한 내 공업지대와 소련의 무상원조도 큰 몫을 발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0대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김일성이 보여준 놀라운 리더십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거대한 사기공화국
3년간의 전쟁이 끝나고 폐허상태의 북한이었으나 한국보다 월등히 빠른 회복력을 보여주었다.
1950·60년대 일본의 소위 ‘진보파’들은 북한을  찬양하고 한국을 폄하했다. 데라오 고로(寺尾五郞) 조일(朝日)협회 이사는 1959년 출판된 북한 방문기 ‘38도선의 북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에서는 모든 직장이 주야를 가리지 않고 하루 24시간 내내 일을 한다. 물론 노동자 한사람 한사람은 8시간 노동을 하지만, 일은 주야 3교대를 통해 24시간 쉬지 않고 진행된다./
평양 호텔의 내 방에서 한밤중에 깜짝 놀라 잠을 깬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작업 교대를 위해 출근하는 청년 근로자들이 대오를 이루어 밤의 찬 기운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노래를 부르며 행진해 갔기 때문이다./
잠에서 깨어 창을 열고 평양의 밤 거리를 내다보았다. 저쪽의 공사 현장. 이쪽의 빌딩. 여기저기서 전기 용접 불똥이 튀고 있었다. 평양의 거리는 얼핏 불꽃을 흩뿌려놓은 듯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특히 1958년에 들어서부터의 급속한 진전은 눈이 부실 정도였다. 천리마는 안장 위에 사람 없고 안장 아래 말이 없는 것처럼 속도를 내고 있었다./
트랙터, 트럭, 불도저, 광산용 전기 기관차, 50t급 냉동선, 4000㎾ 수력발전기, 만능 프레이즈(fraise:톱니 깎는 도구), 디젤 기관, 조선어 타자기. 그리고 작은 것이지만 전기세탁기 등이 그것이다. 승용차도 국산화되었지만 아직 비용이 비싸기 때문에 당분간은 수입한다고 말했다. 
지금 읽어 보면 그 선전과 허위의식에 쓴 웃음을 짓게 만든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 책이 남북한을 다룬 책 가운데 일본서 베스트셀러로 꼽혔다. 그래서 1960년대초 일본인이나 재일교포들은 ‘지상낙원’ 북한에서 살기 위해 북송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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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이 1960 · 70년대 고도성장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루고 1980년대 후반 민주화까지 성취하자, 일본내 북한의 담론도 비판적인 쪽으로 기울어졌다. 물론 북한에 대한 환상도 깨어졌다. 좌파 ‘아카하타(赤旗)지’의 평양 특파원으로 1년간 북한에서 살았고 한국도 방문한 경험이 있는 하기와라 료(萩原遼)가 1989년 발간한 ‘서울과 평양’을 보면 이렇게 묘사돼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나라는 엄청난 거짓말 국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거짓말을 국가의 정책으로 삼아 국가를 세우고 그것을 수행하고 있는 무서운 나라라는 인식이 점차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것을 그렇다고 우겨서 사람들을 믿게 만든다. 나도 속은 사람 가운데 하나다. 사용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사기(詐欺) 이외에 달리 부를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 사기 가운데 하나가 ‘지상 낙원’이다.
북한 인민들은 ‘이 세상에 부러워할 것 하나 없다’라는 노래를 자주 부른다. 또는 불린다. 선전 기관은 밝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행복한 인민. 그것을 안겨준 위대한 김일성 동지의 육친보다 더 큰 배려에 대해 하루 종일 되풀이해서 선전한다.
그러나 이미 말한 것처럼 내 좁은 소견으로 볼 때에도 인민의 생활은 선전과 전혀 다르다.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난한 인민의 나라다. 가난함과 죄는 부끄러움이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아시아의 다른 가난한 나라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이 빈곤함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은폐하고 아름답게 꾸민다는 사실이다. 
그 노력이 집중적으로 가해진 부분이 외국인에 대한 통제다. 특히 서방세계를 두려워한다. 안내원이라고 부르는 감시인을 일대일로 붙인다. 어딜 가더라도 안내원이 따라 붙는다. 주민과 직접 접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게 삼십년전 북한의 실상에 대한 일본 좌파 기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후 북한은 악화일로의 길을 걸었다. ‘죽음의 행진’. 만주로, 미얀마로, 태국으로, 라오스로 목숨을 건 탈출이 시작됐다. 그들은 지금도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국가차원에서 자행한다. 살인행위도 마찬가지다. 일반 국민이 아니라 김일성 로얄패밀리도 최고지도자 눈에 벗어나면 잔혹한 살해를 피할 수 없다.
이들의 이런 적반하장의 사기술. 한국에도 들어오지 않았나. 통계가 조작되고 파렴치한 잘못도 민주화 투쟁이나 헌신으로 둔갑하고 있다. 올바름을 밝히는 의인들이 도리어 악인으로 돼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린 북한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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