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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백세 노인은 없었다”

노화전문가도 깜짝 놀란 장수비결은?

이규연 기자  202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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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경석 장군(맨 왼쪽)과 박상철 교수(가운데)/아주경제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전남대에서 연구 석좌교수로 활동중인 ‘노화 연구 분야 전문가’ 박상철 교수는 지난 11일 아주경제신문에 연재한 칼럼 ‘백년의 대화’에서 올해로 만 100세가 된 6.25 참전용사 장경석 장군을 인터뷰했을 때 느꼈던 특별한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5월초 연휴 기간에 찾은 어떤 백세인은 지금까지 만난 여느 백세인과 차원이 다른 특별한 분이었다. (중략)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백세인은 으레 기력이나 자신감이 어느 정도 쇠하여 있었는데 이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백세인을 조사할 때 기본적으로 시행하는 시간 공간 지남력, 수리력, 기억력, 우울증 여부, 질병이환경력 등에 대한 일반적인 검사 자체가 자신을 무시하는 일이라며 뚝 잘라버렸다.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부와 삶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 있는 분이었다."


그는 장옹(翁)을 가리켜 ‘노인이 아니었다’고까지 말한다. 선대 가족이나 친척 중에 장수한 가족력도 없는 그가 건강한 모습으로 장수를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둘의 대담을 통해 장경석 장군의 장수 비결을 엿볼 수 있었다. 


① 요가와 명상

장경석 장군(이하 장옹)이 요가를 시작한 건 45세 때 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이후다. 한창 일할 나이에 실업자가 되어버린 시련을 극복하기 위해 요가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다 심도 깊은 수련에 대한 갈증을 느껴 요가의 본향인 인도로 떠났다. 그때 그의 나이 칠십세였다. 장옹은 인도에서 만난 요가의 구루(Guru·힌두교에서 일컫는 스승)인 아난다 무르티, 칭하이 무상사와 교류하면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용인대에 국내 체육학계에 최초로 요가학과를 설립하고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요즘도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하거나 명상하는 데 쓴다고 말했다.

“오래 살다보면 친구도 다 죽고 혼자가 돼요. 만일 내가 명상 안 배웠으면 노년에 무엇을 하고, 어떻게 뭘 했을지 몰라요" 


② 탐구(배움) 정신

그가 또 다른 배움의 길로 들어선 건 나이 80이 가까웠던 2000년대였다. 하이텔 단말기라는 간이컴퓨터를 알게 되자 곧장 컴퓨터 기초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동년배들이 중도 포기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매달린 결과 100세가 되는 해에 컴퓨터로 자신의 자서전을 직접 써서 펴냈다. 그는 100세의 나이에도 ‘하나로 첨단이론연구소’라는 연구소를 만들어 운영하며 배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③ 채식·소식 식단 관리

장옹은 80세 되는 해에 자신이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를 만나러 미국에 찾아갔다. 호킨스 박사와 대화를 나누며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이후 매일 새벽 요가 수련과 명상을 하고 철저하게 채식 식단을 지키는 등의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하루 세끼를 정해진 시각에 꼭 맞춰하고 아침은 충분히, 점심은 적당히, 저녁은 소식하는 패턴을 지킨다. 식사 때는 마늘과 낫토를 즐겨 먹는다." 

박 교수는 이런 장옹을 가리켜 ‘늘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는 영원한 구도자’라고 부른다. 

“젊어서는 군인의 길을 걸어 장군이 되었고, 중년에는 요가로 도를 닦아 교수가 되고, 노년에는 컴퓨터를 만나 세상을 폭넓게 개척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시련을 이겨내고 해법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는 영원한 구도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바로 노인을 위한 행동강령으로 본인이 주장해온 ‘하자, 주자, 배우자’ 강령을 실천하여 장수를 이룬 분이었다."

박교수는 저서 『노화혁명』이라는 책에서 ‘노화는 죽기 위한 변화가 아니고 생존을 위한 거룩한 과정이다’라고 썼다.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는 장옹의 발자취는 웰에이징(well-aging)을 꿈꾸는 많은 이들의 귀감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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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저 '노화혁명'/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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