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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잘 살기 (10)

정상에 섰던 한국 대통령들의 말로가 불행한 이유

당신은 어떤 하산길을 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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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도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어렵다. 권력의 정상. 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이다.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지만 질시의 표적도 된다. 한시도 바람 잘 날 없는 험난한 곳이다. 그러나 내려가기는 싫다. 권력이 독재를 낳고, 독재가 재앙을 만든다. 교만, 탐욕, 무절제, 방심이 함께 자리한다. 

결국 하산 시기를 놓친 독재자들의 말로는 비참하다. 히틀러, 무솔리니, 마르코스, 차우셰스쿠, 폴 보트, 이디 아민, 사담 후세인, 카다피 등등….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쫓겨난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1921~2008)은 경제발전과 함께 성공적인 내·외치로 한때 국부(國父)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33년간(1965~1998)의 장기독재와 친인척 비리에 염증을 느낀 민중들의 시위로 밀려나면서 그의 권위는 일순간에 추락하고 업적은  사라져버렸다. 하산 타이밍을 못찾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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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하르토 대통령

 

당시 특파원 신분으로 자주 인도네시아를 드나들며 취재했던 내게, 인도네시아인들은 처음에 그를 ‘구국의 영웅’이라 칭송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 그가 쫓겨나자 ‘탐욕스런 독재자’라고 비난했다. 

우리나라 대통령들도 대부분 마지막이 불행했다. 이승만, 박정희가 그랬다. 전두환, 노태우는 나중에 옥살이를 치렀고, 김영삼, 김대중도 집권 말기 큰 고초를 겪었다. 노무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이명박, 박근혜는 현재 재판 진행 중이며 교도소에 수감돼 있거나 보석으로 집에 갇혀 있는 상태다. 

단순히 개인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망국→식민→분단→독립→전쟁→가난→독재→산업화→민주화로 숨가쁘게 이어진 한국의 현대사, 그 척박한 환경의 탓이 컸으리라.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돼 있는 것은 주로 역대 대통령들의 마지막 불행한 모습들이다. 때문에 그들에 대한 평가는 긍정보다 부정이 우세하다. 여기에도 ‘peak-end(절정과 종결)' 법칙이 적용된다. 

역사는 기억이나 인상으로 평가돼서는 안된다. 정확한 사료와 사실(fact)에 근거해 냉철하게 공과(功過)를 따져봐야 한다. 중간에 잘한 일(功)이 있으면 인정받아야 한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업적은 평가절하되고 잘못만 부각되고 있다. ‘피크(peak)’때 공적은 제쳐두고 ‘엔드(end)’때 과오만 내세운다.   

이웃 중국은 공과 과의 비율이 7대3이면 애국자로 쳐준다고 한다. 1950·60년대 문혁(文革)당시 숱한 과오를 저지른 마오쩌뚱(毛澤東)은 지금도 여전히 지존(至尊)으로 군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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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1927~2015·이하 YS)은 산을 좋아했다. 군사독재 정권 시절 민주산악회를 만들어 등산과 정치투쟁을 병행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YS가 등정과 하산의 원리를 누구보다 꿰뚫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1990년 YS는 자신의 민주당(제2야당),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집권여당), 김종필의 공화당(제3야당) 등 3당 합당을 통해 민자당을 탄생시켰다. 그 여세를 몰아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됐다. 

1993년 2월 취임 후 YS의 초반 기세는 대단했다. 한때 지지율 90%를 넘기도 했다. 그러나 그해 12월 급작스런 쌀개방 조치 발표와 함께 지지율은 급락했다. 이후 민심은 이탈하기 시작했다. 

결정적인 것은 1995년말 ‘역사 바로 세우기’ 조치. 국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보유 의혹이 폭로되자, YS는 ‘역사 바로 세우기’란 아젠다로 연결, 비자금은 물론 1979년 12. 12 사태, 1980년 5.18 조치에 대한 전면 수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비롯 신군부 세력은 구속되고 재판을 받았다. 나라 분위기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국민들 중에는 ‘역사 바로 세우기’의 명분에 일견 공감하면서도 과연 YS가 그 일을 주도할 적격자인가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본인부터가 신군부세력의 도움으로 대통령에 오른 당사자 아닌가. 과연 자신은 하늘을 우러러 한 줌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단 말인가?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요, 정통성을 크게 훼손시켰다. 과연 그보다 더 지혜로운 방법은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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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세상만사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업보(業報)다. 그의 냉혹한 조치는 부메랑이 돼 자기 아들 김현철의 구속으로 이어졌다. 현직 대통령 아들의 구속은 헌정사상 최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자칫 우리나라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이 송두리째 날아갈 뻔했다. IMF 사태를 맞게 된 것이다. 

결국 YS는 정권도 야당에게 빼앗기고 임기 마지막 지지율은 6%대로 떨어진 채 초라하게 물러났다.  

돌이켜 보건대 그는 권력의 정상에서 하산 타이밍과 방법을 놓쳤다. 집권 후반기에 권력을 절제해야 하는데 도리어 권력의 칼을 휘둘렀다. 교만해서일까. 자신의 흠은 보지 못하고 남의 허물만 보았다. 

방심한 탓일까. 하산 중 미끄러졌다. 그리고도 계속 방심했는지 아예 벼랑 아래로 추락할 뻔 했다. 금융위기로 나라가 거덜 날 뻔한 것이다. 다행히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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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티르 모하마드

 

그로부터 몇 년 뒤 당시 말레이시아 총리로 있던 마하티르 모하마드(1925~ )를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는 1981년부터 22년간 총리로 재직하면서 말레이시아의 경제발전을 이끌었고 지금 구순이 넘은 나이에 또다시 총리로 재직중인 인물이다. 그는 YS의 행동에 대해 매우 솔직하게 비판했다. 

“국민의 원성을 들으며 죽을 때까지 권좌를 유지하고 싶은 지도자는 별로 없을 겁니다. 국민들의 박수를 받고 물러나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싶은데 문제는 정치보복입니다. 특히 개도국 지도자들의 경우 나라를 운영하다보면 손에 흙을 묻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민주적이진 않지만 힘센 리더가 있다고 합시다. 사람들이 그에게 권력을 포기하고 민주화를 이룩하자고 설득합니다. 이후 막상 민주화가 되자, 사람들은 그를 감옥에 넣습니다. 그것이 공정한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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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슨 만델라

 

YS와 대조되는 이가 비슷한 시기에 아프리카 남아공 대통령을 지낸 넬슨 만델라(1918~2013)다. 만델라는 소수 백인이 정권을 잡고 악명 높은 인종차별정책(아파르트 헤이트)을 통해 동족 흑인을 차별하는데 항거,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옥살이를 하다 1990년 국제여론에 의해 석방됐다. 

1994년 흑인 최초로 남아공 대통령으로 당선된 그는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고 수백만 동족을 살상한 ‘철천지 원수’ 백인들을 용서하고 화해와 관용조치를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  

또한 그는 자신은 나라를 통치하기에 적합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며 1999년 재선 요청을 뿌리치고 초야에 묻혔다. 만약 그가 아니었다면 남아공은 흑백간 엄청난 유혈충돌과, 권력 쟁탈전으로 큰 혼란에 시달렸을 것이다. 

권력의 정상에 있을 때 만델라를 이끈 것이 겸손과 관용의 정신이다. 그가 2012년 발간된 본인의 미공개 기록 ‘나 자신과의 대화(원제 Conversations with Myself)'에 이런 말이 나온다.

“감옥이 자신을 알고 깨우치기에, 자신의 마음과 감정의 흐름을 냉철하게 규칙적으로 살펴보기에 이상적인 곳임을 발견할 지도 모르오. 성인은 계속 노력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오."

그는  오랜 투쟁과 모진 감옥생활을 통해 권력의 해독과 용서의 위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이 점에서 그는 명백히 YS와 대척되는 인물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시 ‘낙화’중에서>


화려하게 등장했다면 그만큼 아름답게 퇴장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잘나가다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후회와 회한 속에서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거나, 불행하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이 꽤 된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크고 작은 산봉우리를 수없이 오르고 내린다. 항상 실수나 악천후에 대비해야 하며, 정상에 올라가는 즉시 하산을 준비해야 한다. 우리 인생에서 정상에 서는 것은 절반의 목표를 이루었을 뿐이다. 나머지 절반을 잘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당신은 어떤 하산 길을 택할 것인가.


열번째 기억하기

화려하게 등장했다면 아름답게 퇴장할 줄 알아야 한다


 

 

 

글ㅣ 함영준
22년간 신문 기자로 일했다. 국내에서는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해외에서는 뉴욕, 워싱턴, 홍콩에서 세계를 지켜봤다. 대통령, 총리부터 범죄인, 반군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과 교류했으며, 1999년에는 제10회 관훈클럽 최병우기자 기념 국제보도상을 수상했다.
스스로 신문사를 그만둔 뒤 글을 썼고 이후 청와대 비서관 등 공직 생활도 지냈다. 올해 마음건강 ‘길’(mindgil.com)을 창간해 대표로 있다. 저서로 <나 요즘 마음이 힘들어서>,
<내려올 때 보인다>,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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